왕실에서도 애용했던 한국 최초 메이커 상품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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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8월 5일, 대륙고무주식회사(이하 대륙고무)가 한국 최초의 메이커 상품인 검정고무신 '대장군'을 공식적으로 생산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하영이 설립한 대륙고무는 완전한 고무로 만든 '조선식 고무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대장군'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이 검정고무신은 출시 직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대장군'의 성공을 본 다른 기업들도 고무신 생산에 뛰어들며 고무신은 온 국민의 신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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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22년 8월 5일, 대륙고무주식회사(이하 대륙고무)가 한국 최초의 메이커 상품인 검정고무신 '대장군'을 공식적으로 생산했다.
당시 조선의 신발은 짚신과 가죽신이 대부분이었다. 비가 오면 쉽게 젖고, 내구성이 약해 자주 바꿔 신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일본을 통해 들어온 고무신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이 또한 고무와 가죽을 혼합한 형태라 완전한 고무신은 아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하영이 설립한 대륙고무는 완전한 고무로 만든 '조선식 고무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대장군'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이 검정고무신은 출시 직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짚신보다 훨씬 질기고 튼튼했으며, 물이 새지 않아 비가 오는 날에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선인이 만든 고무신'이라는 자부심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대장군'의 성공은 대륙고무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회사는 주식회사로 승격하며 고무제품 생산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대장군'은 당시 신문에 실린 광고에서도 그 위용을 뽐냈다. '이 왕(순종)께서 이용하심에 황감함을 비롯하여 여관(女官) 각 위의 애용을 수하야…'라는 문구는 고무신이 왕실에서도 애용하는 고급 상품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전통적인 짚신과 마른신의 형태를 본떠 제작되어 조선인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갔다.
'대장군'의 출시는 자본과 기술력이 부족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 스스로가 만든 상품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후 '대장군'의 성공을 본 다른 기업들도 고무신 생산에 뛰어들며 고무신은 온 국민의 신발이 되었다.
'대장군'은 우리 신발 산업의 시초다. 아울러 조선 민족의 자립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상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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