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산수화, 30년 만에 한곳서 보니 꿈같아”
이타쿠라 마사아키 도쿄대 교수

“조선 전기 산수화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건 30년 만입니다. 1996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조선 전기 국보전’을 보고 흥분해서 잠을 못 잤던 기억이 생생한데,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림들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전시가 열려서 연구자로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동아시아 회화사 연구자인 이타쿠라 마사아키(板倉聖哲·60)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을 N차 관람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 전기 산수화는 워낙 남아 있는 작품이 드물고, 그나마도 일본·미국·유럽 등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전시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번 특별전엔 세 차례 교체 전시를 통틀어 산수화만 31건 68점이 나왔다.

특히 원래 한 세트였던 미국 LA카운티미술관 소장 ‘산시청람도(山市晴嵐圖)’와 일본 야마토문화관 소장 ‘연사모종도(煙寺暮鍾圖)’가 처음으로 나란히 걸렸다. ‘소상팔경도’ 중 두 장면에 해당하는 그림이다. 이타쿠라 교수는 지난달 본지 인터뷰에서 “예전부터 두 그림을 꼭 같이 전시하고 싶었는데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그 꿈이 실현돼 너무 기쁘다”며 “일본과 미국에 따로 떨어져 있던 그림이 드디어 한자리서 만난 것”이라고 했다.

15~16세기 조선 전기 산수화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것으로 잘못 알려졌던 작품이 많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일본 모리박물관 소장 ‘산수도’ 3폭(지난달 20일까지 전시)도 한때 송나라 그림으로 여겨졌던 작품이다. 이타쿠라 교수는 기존에 중국 것으로 분류됐던 산수화의 국적을 ‘조선 전기 산수화’로 밝혀내고 있는 주역이다. 지난 2023년 일본 후쿠오카시미술관에서 공개된 산수화 ‘방곽희추경산수도(倣郭熙秋景山水圖)’는 일본인 소장자가 명나라 작품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타쿠라 교수가 건물 기단, 인물 표현 등을 통해 조선 15세기 회화임을 처음 밝혔다.<<b>본지 2023년 9월 22일 A2면 보도>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이 작품은 이후 일본 규슈국립박물관 소장품이 됐고 이번 전시에 빌려오려고 했으나 지난 5~6월 열린 규슈박물관 특별전에 출품돼 아쉽게도 이번 용산 전시에는 오지 못했다”고 했다.

이타쿠라 교수는 중국 및 한국 회화사 분야에서 탁월한 권위자다. 일본 나라현 야마토문화관에서 학예직으로 일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고, 한국·중국·일본의 다양한 작품을 실견·조사했다. 그는 “조선 전기 산수화가 현존하는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 작품씩 ‘발견’될 때마다 굉장히 귀하다”며 “중국 회화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바위나 건물 묘사, 인물 복식, 경물 표현 등에서 조선 전기 회화에서만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들이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산수화 속 인물들이 조선시대 복식인 흑립(갓)을 쓰고 있거나 조선 건축물 특유의 ‘허튼층쌓기’ 기법이 나타나는 등 중국·일본에는 없는 조선 고유의 특징이 보인다는 얘기다.
그는 “15~16세기 동아시아에선 송나라 회화를 고전 삼아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려는 흐름이 퍼져 있었는데, 그 재현 수준이 당시 중국보다 조선이 더 높았다”며 “중국은 원·명대를 거치면서 스타일이 조금씩 변했지만, 조선은 최대한 북송(北宋) 그림에 가깝게 재현하는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선만의 정체성도 뚜렷했다”고 분석했다.

이타쿠라 교수는 “머릿속에서만 비교했던 작품들을 눈앞에서 직접 감상하며 검증할 수 있는 기회라 연구자들에겐 꿈만 같은 전시”라며 한 가지 바람도 전했다. “호암갤러리 전시 이후 30년 만에 맞는 기회인데, 앞으로 30년 뒤엔 제가 90세가 됩니다. 그땐 다시 한국에 오기 어려울 것 같으니 조금만 앞당겨서 10년마다 한 번씩 이런 전시를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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