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도 모자라 80억으로… 마통으로 버티는 적자의 전당

개인만 마이너스 통장(마통)을 쓰는 것이 아니다. 1988년 개관한 예술의전당도 극장 운영비와 직원 월급을 ‘마통’에서 긴급 충당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30억원 한도의 ‘마통’을 사용했는데 최근 두 배가 넘는 80억원으로 한도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술의전당은 오는 13일 이사회에서 이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본지가 입수한 지난 30년간 예술의전당 운영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부터 적게는 7억원, 많게는 136억원까지 해마다 적자를 기록했다. 개관 초기인 1990년대만 해도 적자 규모는 연간 7억~11억원 정도였는데 2000년대 들어서 급증했다.
특히 2007년 오페라하우스 화재 사건 직후에 연간 적자가 33억원에서 54억원으로 늘었고, 지난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한 해 136억원까지 눈덩이처럼 적자가 불어났다. 이 때문에 2023년 현재 적자가 누적된 결손금은 70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의전당 측은 “공연장 리모델링 공사와 주차장 증축 등으로 10여 년 전부터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지만, 코로나 시기에 취소된 공연의 계약금 전액 반환 등으로 현금 유동성이 악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마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클래식 늘리면 적자… 콘서트 열면 “돈벌이하냐” 손가락질
지난 30년간 예술의전당 운영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중 예술의전당이 흑자를 본 해는 정부 지원과 기업 후원이 컸던 2008·2010·2023년의 딱 3년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2008년에는 예술의전당 메인 입구에서 이어지는 편의 시설과 이벤트 공간인 ‘비타민 스테이션’ 조성을 위해 우리은행에서 40억원을 기부했다. 또 CJ그룹과 IBK기업은행이 각각 150억원과 45억원을 후원하고 CJ토월극장과 IBK기업은행 챔버홀이라는 명칭을 붙인 2010년에 72억원의 흑자를 냈다. 건물에 개인이나 기업의 이름을 붙이는 명명권(命名權·네이밍 스폰서)을 통해 수익을 낸 것이다.
지난 2023년에는 예술의전당이 부담해야 할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납부액(125억원)을 정부가 국고에서 지원한 덕분에 83억원의 ‘깜짝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 30년간 흑자를 낸 해는 딱 이 3년뿐이었다.한국 최고의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이 어쩌다 ‘적자(赤字)의 전당’이 되고 말았을까.

◇공연 예술 산업의 딜레마
2023년 예술의전당은 한 해 사업 수익금(640억원) 가운데 절반가량(324억원)을 국고 보조금으로 지원받았다. 산하 예술 단체를 지니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사업 수입(604억원) 가운데 서울시 출연금이 74%(448억원)에 이른다. 쉽게 말해서 공연장은 공연 수입만으로는 ‘만성 적자’에서 헤어나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왜 그럴까. ‘공연 예술은 제조업이나 IT 산업에 비해서 생산성 향상은 더딘 반면, 비용 상승은 가파르기 때문에 재정적 난관에 부딪히고 만다’는 노동 집약적 특징 때문이다. 기술 발전으로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은 줄어들 수 있지만, 셰익스피어 연극이나 슈베르트 현악 4중주에 투입되는 인력이나 공연 시간을 줄일 방도는 없다는 뜻이다. 문화 경제학의 교과서로 불리는 미국 경제학자 윌리엄 보멀과 윌리엄 보웬의 ‘공연 예술의 경제적 딜레마’에서 유래한 이 이론은 창안자의 이름을 따서 ‘보멀 효과(Baumol effect)’ 또는 ‘비용 질병(Cost Disease)’으로 불린다.
◇공공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여타 공공 예술 기관과는 다른 예술의전당만의 특수성도 있다. 다른 국공립 예술 단체나 공연장들은 대부분 정부 소속 기관(국립중앙극장)이거나 재단법인(세종문화회관)이다. 지방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곳도 있다. 반면 예술의전당은 2000년 개정 공포된 문예진흥법에 따라서 특수법인이 됐다. 이전에는 서초동 건물·부지의 ‘임차인’이었는데 특수법인화로 재산 ‘소유주’가 되면서 세금 부담이 크게 늘었다. 한 해 예술의전당이 내는 종부세·재산세는 40억~50억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더 큰 결정적 문제가 있다. 공공성과 수익성의 ‘두 마리 토끼’를 좇다가 ‘갈지(之)자 행보’를 거듭했다는 점이다. 공연장을 민간 기획사나 예술 단체에 임대해주는 ‘대관 사업 수입’은 지난해 전체 사업 수입(509억원) 가운데 22%(113억원)에 이르렀다. 이를 두고 치열하게 자체 공연을 기획하기보다는 손쉬운 돈벌이에 치중한다며 ‘대관의 전당’이나 “임대업에 열 올리는 부동산”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반대로 공공성을 지나치게 앞세우다 보면 적자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 직후인 2021년 예술의전당 자체 공연은 음악당 88회와 오페라극장 13회 수준이었다. 반면 지난해는 음악당 109회와 오페라극장 117회로 대폭 늘었다. 자체 공연을 늘리니 동시에 적자도 불어나 적자액이 78억원에 이르렀다. 순이익을 내기 쉽지 않은 클래식과 오페라의 장르 특성상 기획 공연을 늘릴수록 적자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낙하산 인사’와 문체부 관료 위주의 인사
전문 경영인의 부재 역시 만성 적자를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권 교체 때마다 예술의전당 기관장 역시 ‘낙하산 인사’와 문체부 관료 위주의 인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개관 37년에 이르면서 건물·장비 노후화로 시설 유지와 개·보수 비용이 불가피하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1993년 개관한 오페라하우스도 현재 리모델링 공사를 추진 중이다. 결국 건물은 낡아가는데 살림살이에는 계속 ‘빨간불’이 켜지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공연 칼럼니스트 한정호씨는 “명명권을 확대하고 후원·협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수익성 제고를 위해 과감한 발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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