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고난[임용한의 전쟁사]〈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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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 캄보디아가 잠깐의 전쟁을 했다.
1960, 7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캄보디아는 애꿎은 피해를 당했다.
미군 전쟁사에서 가장 한심한 결정이 베트남으로 향하는 전쟁물자 수송로를 끊겠다는 목적의 캄보디아 폭격이었다.
베트남에선 방공망 탓에 미군 전폭기들이 되레 피해를 입었지만, 캄보디아에는 그런 방공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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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트가 일으킨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인구 4분의 1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미군 폭격에 의한 희생자 수에는 과장이 있지만, 킬링필드에 미국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후 1999년까지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주와 내전 상태를 이어 갔다.
베트남전쟁기에 실전으로 단련된 베트남 인민군의 전투력은 대단했다. 미군도 그 실력을 인정했다. 크메르 루주도 실전 경험으로 자신감을 다졌지만, 베트남군에 도전했다가 2주 만에 수도 프놈펜이 함락됐다. 다만 북부 정글과 산악지대를 기반으로 한 게릴라 투쟁은 난공불락이어서 세계 최고의 정글전 능력을 자랑하는 베트남군조차 고전했다. 이 과정에서 태국군은 크메르 루주 및 베트남군과 국경에서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이번 국경 분쟁의 한 원인일 수도 있다.
그 후 베트남이 경제성장을 이루는 동안 캄보디아 경제는 침체했다. 이번에 드러난 군사력은 그 현실을 대변한다. 캄보디아 공군은 헬기에 의존할 만큼 열악하고, 실질적인 전력은 육군뿐인데 그 능력조차 명확하지 않다. 가난한 나라에서 ‘빈부 격차가 없어서 행복하다’는 말은 환상으로 치부한다고 해도, 힘이 없어서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의 운영 원리가 바뀌고 있다. 앞으로 한 세대 동안 세계 곳곳에서 힘없는 나라들이 겪는 고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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