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진주박물관 특별전 천년 진주, 진주목 이야기] 들여다보기(2)

경남일보 2025. 8. 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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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산이 넉넉한 땅, 진주

조선시대 진주지역은 남강 유역의 토산물과 남해의 수산물이 많이 나는 곳이었다. 조선 전기 인물인 하연은 "진주라는 고을은 지리산의 빼어남과 남해의 오묘함이 잘 빚어지고 조화돼 토지가 비옥하고 풍요로우며, 인물이 번성해 다른 고을에 비할 바가 아니다"고 평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나라 안에서 가장 기름진 땅은 전라도 남원·구례와 경상도의 성주·진주 등이다. 그곳에는 논에 1말의 씨를 뿌리면, 최상은 140말을 거두고 다음은 100말을 거두며 최하는 80말을 거둔다"라고 했다. 이 기록들은 진주의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한 곳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종이 제조, 사기 제작 등 다양한 수공업도 발달했다. 또 농산물과 수공예품, 해산물을 유통하는 보부상 조직이 19세기 초에 생겨나 상업 발전에 기여했다. 게다가 진주목의 가산창에서는 진주와 주변 고을의 조세를 모아서 서울(한양)의 조정으로 보내면서 주변의 상업에 크게 이바지했다.

조선시대 진주 사람들은 경제적인 풍요를 바탕으로 교육에 힘써 많은 인물을 배출했고, 오광대 등 놀이 문화를 발전시켰다. 또 각종 모임을 조직해서 향촌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진주목은 경상우도의 중심 고을로서 명성을 떨쳤다. 근·현대 이후 진주 지역은 경남 도청 소재지로서 새로운 문물을 일찍 도입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경영하는 최초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가 창간됐고, 20세기 초에는 신식 학교가 많이 생겼다. 근대 상업은 상설시장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상인에서 기업가로 성장한 사람도 나왔다.

'물산이 넉넉한 땅, 진주'라는 주제로 진주목의 문화유산을 소개할 때, 가장 주목되는 것은 진주상인의 역사를 소개하는 진주상무사 자료다. 진주상무사는 19세기 초반 진주지역의 보부상단에 기원을 두고 결성돼 여러 차례 명칭을 변경하면서 오늘날에 이른 진주지역의 대표적인 상인 조직이다. 이 자료는 기존의 다른 지역 보부상단의 자료와 달리 경상우도의 으뜸 고을인 진주목에서 활동한 보부상단의 자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자료를 통해 한 도의 대표 고을의 상인 조직의 운영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 고을인 단성, 곤양 등의 장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주 상인의 상업 활동도 살필 수 있다. 몇 가지 중요 문화유산을 소개하겠다.

진주 상리국 임소 반수표(좌측)와 진주 상리국 임소 접장표 인장. 소장=국립진주박물관


'어과전 천금록'은 1834년부터 1912년까지 활동한 어과전 등 부상(등짐장수) 조직의 임원 명단과 운영 규칙을 기록한 책이다. 이 자료는 진주 상인 관련 문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34년부터 진주지역 부상 조직의 임원 명단이 수록돼 있다. 이 자료로 인해, 진주 상인이 적어도 1834년부터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상업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료의 운영 규칙에는 시장 내에서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리거나 도박을 한 행상을 엄히 다스리고, 물건을 매매할 때 시세를 어기거나 억지로 매매하는 자를 엄격하게 처분하게 하며, 훔친 물건을 파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부상단이 장시 내의 상거래 관행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어과상(어물과 과일을 파는 등짐장수) 신분증이다. 이 신분증은 1884년 진주지역 어과상에게 발급한 호패 형식을 띠고 있는 신분증이다. 신분증에는 종사하는 업종, 이름, 나이, 활동 지역, 가입 연도가 새겨져 있다. 한 예로, 어물과 과일을 파는 상인 이두석이 나이 35세로 갑신년(1884년)에 보부상 조직에 가입했다는 내용이 신분증에 새겨져 있다. 호패 형식으로 보부상의 신분을 기록한 자료는 현재까지 진주의 사례가 유일하다. 또 진주 상업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인장이 다수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혜상공국 우사 경상우 도반수(1883년), 진주 상리국 임소 반수표(1884년), 경상남도 상무우사 도상무원장 이운영(1890년대), 상무회 경남 진주군지부지인(1920년대) 등이 있다.

이 진주상무사 자료들은 조선시대 진주 상인의 활동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진주 상업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다. 특히, 오늘날 진주시를 넘은 공간을 대상으로 활동한 진주 상인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이 자료들은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조명되어야 할 문화유산이다.

이효종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1884년 발급된 진주지역 어과상 신분증 앞면. 소장=국립진주박물관
1884년 발급된 진주지역 어과상 신분증 뒷면. 소장=국립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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