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매섭고, 무심하지만 누구보다 애정 깊던 공동체주의자
지난달 25일 고향 창녕 영산 살던 집에서 숨 거둬
"말씀은 매섭게 해도 속정있던 사람"
마지막 책 〈사람들은 어디 갔노, 청산만 날 부르네〉
일생 이야기와 가족에 대한 사랑 담아내기도
농민운동가 천규석 선생은 지난달 25일 창녕군 영산에 있는 그의 집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가 바라던 바였고 참으로 그다운 방식이었다. 4월 출간된 그의 마지막 책 〈사람들은 어디 갔노, 청산만 날 부르네〉에서 그는 스스로를 소농두레(농본공동체) 연합주의자, 소수파·보편주의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는 조용한 실천가로서 생명을 역설한 이 시대 또 한 명의 '참된 어른'이었다.

◇이 시대 또 한 분 '참 어른' = 선생은 1938년 창녕군 영산에서 태어났다. 1961년에 입학한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다닐 때는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옥고를 치렀다. 졸업 후 1965년 귀향해 농촌공동체재생운동에 매달렸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창립 공동 이사인 조성국 선생의 권유로 자신의 고향 문화유산인 영산줄다리기를 전수했다. 이 인연으로 한국민예총 2대 공동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천 선생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 초기부터 함께했다. 1987년 서울 한살림 초대 이사를 지냈고, 1990년 대구한살림 창립에 일조하고 오랫동안 몸담다 2014년 은퇴했다. 〈녹색평론〉 초기 필진으로 참여해 편집자문위원까지 맡았다.

◇엄한 말 속에 담긴 따뜻함 = 천 선생의 다섯 자녀 중 셋째 딸 천민해(63·대구시) 씨는 아버지에게 감사하다. 평생을 우직하고 강직하게 건강하게 지내주셨다. 긴 세월을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열의에 차 생을 보냈다. 덕분에 자신도 삶과 일에 열중할 수 있었다.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영산집에 가면 아버지가 계실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집을 정리하려면 1년 정도 걸리겠다 싶다. 아버지께 할 말이 많았는데 재생불량성 빈혈로 누워계시니 말문이 막혔다. 마지막 책에 자식들에게 쓴 글이 있다.
"미안하다. 자상하지 못한 건 나도 알지만, 권위적이라고 하니 미안하다. 제일 미안한 건 너희들 엄마를 못 지키고 나만 오래 살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다 못 했지만 나도 다른 아버지들 못지않게 너희들이 있어 기뻤고 아팠고 사랑했다."

◇매서운 지적 안에 담긴 애정 = 엄하게 말하지만, 그 속에 든 정을 느낀 건 딸 뿐만이 아니다. 창녕에서 노래지으며 개똥이어린이예술단을 이끄는 우창수 가수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말씀을 워낙 매하게(매섭게) 해서 따듯하게 말해줘도 될 텐데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모두 옳은 말씀이었고 그 안에 애정이 있음을 안다."
그러면서 천 선생의 성정을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둘의 인연은 우 가수가 개똥이와 함께 만든 노래에서 시작됐다. 그는 2017년에 우포늪 가에서 하는 생태·영성음악제에서 천 선생을 초청해 '살림의 말씀'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때 천 선생이 '소야골 텃밭' 노래 중 '그리워서 심었다는…'을 본래 뜻 '기리버서'로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국어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데, 천 선생은 그의 책 〈망쪼 든 세상 그래도 기리버서〉에서 "귀하고 중한 것, 지성으로 섬겨야 할 것, 꼭 챙겨야 할 것 등이 기리번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직하게 걸어온 한 길 = 천 선생은 자식에게 목매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자식이 못 오면 못 오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그는 자신의 영산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밭을 일구며 삶을 꾸려나갔다. 이는 같이 일했던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김영동(68) 전 한살림대구 이사는 늘 그를 만나려 창녕에 간다 하면 "뭐 하러 오느냐, 내가 대구 가거든 연락하겠다"라고만 답했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는 가족장으로 치른 장례에 유일한 외부인으로 참여한 이다. 그는 천 선생을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전국이 뜨거워지던 때 처음 봤다. 천 선생은 농민들이 농약을 치다가 너무 많이 들이마셔 죽음에 이르는 걸 봐왔다. 그리고 그런 농약을 친 농산물을 먹어야 하는 시민을 떠올렸다. 그는 거리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운동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는 근본적이고 환경적이고 토양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전 이사는 "선생은 삶의 원칙, 원리를 따르려고 애썼고 몸소 적극적으로 실천했다"며 "그걸 따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보면 불편했을 수도 있다. 가끔은 합리화하거나 변명할 수도 있는데 천 선생에게 타협이란 없었다"고 말했다.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