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뉴스 솎아내기] 경계해야 할 日의 ‘반도체 재건’ 전략

지난 1980~199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은 세계 반도체 강국이었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파나소닉, 히타치, NEC, 도시바, 후지쓰, 미쓰비시전기 등 전자 대기업들은 D램 자체 개발 및 사업화를 추진했다. 1970년대 미국 인텔의 D램 개발 이후 후발주자로 나선 일본 업체들은 특히 오일쇼크로 미 기업들이 반도체 투자를 줄여가는 시기에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기업들의 기술력 확보로 1980년대 들어 세계 시장을 장악하게 이른다.
하지만 버블 경제가 붕괴되고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가 모두 후퇴함에 따라 2000년대 들어 점유율이 10% 아래로 추락하기에 이르렀다.일본 반도체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023년 4위(9.0%)에 그쳤으며, 2023년과 2024년 매출액 기준 상위 10대 기업에 일본 기업들은 전무하다.
이랬던 일본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전략에 맞춰 ‘반도체 부흥’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겨냥, 대중 압박 강도를 연일 높이고 있는 미국의 전략을 자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 제고에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에겐 ‘나쁜 뉴스’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22년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한데 이어 이듬해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수립,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자 ‘경제안보 핵심 품목’으로 규정하고 첨단 반도체 기술 확보와 제조역량 부활을 위한 단계별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해 11월 ‘AI·반도체 산업기반강화 프레임’을 통해 2030년까지 10조엔 이상 공적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을 국가전략으로 삼은 일본 정부의 ‘반도체 재건’ 정책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반도체 업체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 지급과 글로벌 기업 유치다. 일본 정부는 보조금 지원을 위해 지난 2021년부터 3년간 약 3조8000억엔(약 36조7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또한 반도체 생산거점 4개 도시(지자체)에 2023~2024년 총 149억5000억엔의 교부금을 지원했다. 인프라 구축을 통해 TSMC, 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고, 키옥시아, 르네사스 등 자국 반도체 기업도 돕기 위한 것이다. 소니그룹, 미쓰비시전기 등 8개사는 이에 호응해 2029년까지 5조엔 규모의 반도체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둘째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술 우위를 활용한 글로벌 공급망내 일본의 존재감 강화와, 산업혁신투자기구(JIC) 펀드를 활용한 국내 핵심 기업 인수 추진이다. 우호국과의 첨단기술 공동 연구, 소·부·장 기업 대상 생산설비 확충, 연구개발(R&D) 지원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JIC 펀드는 지난해 4월엔 포토레지스트 기업 JSR을, 올 상반기엔 FC-BGA 제조업체 신코덴키를 인수하기도 했다. 제조·생산에만 초점 맞추지 않고 팹리스(설계), 파운드리(제조), 후공정(OSAT) 등 각 공정별 기업들도 지원한다. 소·부·장과 핵심기술 경쟁력을 활용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자국 공급망으로끌어들이는 전략이다.
셋째는 광전융합, 저전력반도체 소재 개발 등 차세대 반도체 시장 선점을 위한 미국·EU 등과 첨단기술 R&D 협력체계 구축이다. 이를 위해 일본 최첨단반도체기술센터(LSTC)는 미국 NSTC, 벨기에 IMEC와 R&D 연대 체제를 구축했다.
일본이 반도체 분야에서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로 전락했다고 하지만 잠재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메모리에선 한국에 뒤지지만 비메모리 부문에선 세계 시장 점유율이 8.6%로 한국(3.3%)보다 앞선 4위다. 카메라 렌즈로 들어온 빛을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시스템 반도체인 이미지센서에서도 저노이즈, 고감도기술 등 성능면에서 소니세미컨덕터가 22.2%의 점유율로 삼성전자(19.7%)를 앞선 세계 1위다. 마이크로컨트롤러 유니트(MCU)는 르네사스가 13.3%로 3위이며, 전력반도체는 2022년 기준 일본계 기업이 25.5%의 시장을 차지했다. 게다가 메모리인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키옥시아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어 3위(2023년 기준)를 차지했다.
실리콘웨이퍼,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관련 소재 및 부품 분야에선 일본 기업들의 점유율은 48%로 압도적이며, 세정장치 등 장비 부문에서도 미국에 이어 30%대 점유율로세 계 2위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재건을 위해 3단계 전략을 추진중이다. 1단계는 반도체 국내 생산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TSMC 공장 유치로 일본 산업계의 수요가 큰 12~28nm(나노미터) 로직 반도체 수급을 겨냥하고 있다. 2단계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과 메모리 고성능화다. 특히 2027년 양산을 목표로 2nm(나노미터) 로직 반도체 제조거점을 마련하고, 2nm를 넘어서는 R&D 거점 설립을 추진한다. 3단계는 미래 기술개발, 특히 고도 처리기능과 에너지 절감 성능을 갖춘 광전 융합, 양자 기술 등을 연구해 게임체인저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보조금 지원외에 레거시 반도체(MCU, 아날로그, 파워반도체) 제조 기업을 대상으로 생산량과 판매량을 비례·계산해 법인세를 일정 한도내에서 감세해주는 방안, 인프라 구축, 인재 육성, 대출 및 이자 지원 방안 등도 강구 중이다.
최효식 코트라 도쿄무역관 차장은 “일본 정부는 산업의 쌀이자 경제안보 품목인 반도체 산업 재건을 ‘생존전략’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한국도 단기적 세제 혜택을 넘어 장기적이고 실효성 있는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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