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속옷 저항’과 조국 사면 [박찬수 칼럼]


박찬수 | 대기자
같은 시기에 옥중에 있다는 이유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손쉽게 윤석열 전 대통령과 비교된다. 윤 전 대통령이 속옷 차림으로 버티며 특검의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에선 “조국 전 대표가 감옥에서 뭘 입고 있었다고 검찰이 발표했다면, 가만있었겠느냐”라며 특검의 인권 침해를 비난했다. 그러나 검찰 총수와 대통령까지 지낸 인사가 이런 식으로 법 집행에 ‘저항’하는 행동의 괴이함이 국민에게 충격을 준 것이지, 그의 차림새가 본질은 아니다. 조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수감될 때 “법원의 사실 판단과 법리 적용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대법원 선고를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가 ‘과도한 검찰 수사의 희생양’이란 주장에 설령 동의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을 같은 선상에서 똑같은 범죄자 취급하는 건 온당치 않다.
최근 조국 사면론이 일면서, 이를 윤석열 사면과 연결하는 시각도 비슷하다. 조국 사면에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는 “아직 형기의 절반도 채우지 않은 조 전 대표를 사면하면, 나중에 윤 전 대통령을 사면하라는 요구엔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나”라는 것이다. 조 전 대표를 사면한다고 해서 ‘사면의 원칙과 기준이 흔들릴 것’이란 생각은 지나친 비약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대법원 확정판결 뒤 불과 8개월 만에 특별사면됐다. 단언컨대, 조국 사면 여부와 관계없이 앞으로 3년 안에 ‘윤석열 사면론’은 물 위로 떠오를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 분위기로 보면, 2028년 총선에서 야당은 ‘옥중에서 건강을 잃은 윤석열 석방’을 전면에 내걸고 보수표 결집을 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사면은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목표의 문제다. 중세 왕의 특권이던 사면권이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온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원의 상징인 ‘정의의 여신 디케’가 눈을 가린 건, 어떤 외적 조건에도 영향받지 않고 오직 사법적 원칙에 따라 판결하라는 뜻이다. 정치는 다르다. 때론 사법적 판단보다 정치적 결정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사면권’이란 절대 왕정의 유산을 1787년 미국 헌법에 부활시켰다.
조국 사면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이 “입시 비리는 유죄가 분명한데, 그 상흔이 너무 깊은데, 벌써 사면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말한다. 반대로 “조국은 죄가 없다. 사면이 아니라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그가 받은 구체적 혐의의 사실 여부를 여기서 상세히 따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조국 전 대표의 아내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3년 넘게 수감생활을 하면서 형기를 마쳤고, 딸은 벌금형 선고와 함께 의사 면허와 대학·대학원 입학이 모두 취소됐고, 조국 자신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진 모르나, 적어도 조국 가족의 그 누구도 윤석열이나 김건희처럼 형벌을 받는 걸 거부하거나 도망치려 한 적은 없다.
사면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1860년대 남북전쟁 시기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남부연합에 가담한 시민들을 사면하려 하자, 의회 강경파들이 반대했다. ‘처벌 없는 사면은 정의를 훼손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링컨은 “지금은 미국을 통합하고 재건할 때”라며 대사면을 실시했다. 남북전쟁 시기 링컨 대통령의 행동이 지금도 그를 가장 훌륭한 미국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게 한 배경이다.
그때의 사면 목표가 ‘통합과 재건’이었다면, 지금은 어떨까. ‘내란 극복과 새로운 도약’이 아닐까 싶다. 탄핵으로 조기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내란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민의 뜻을 한데 모아 국가 재도약에 나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오는 15일 광복 80돌을 맞아,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자리임을 상징하는 ‘국민 임명식’을 여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사실 고민의 핵심은 조국 전 대표를 사면 대상에 포함하느냐가 아니다. 조국을 제외했을 때 탄핵을 위해 싸운 많은 이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점이다. 조국 전 대표가 12·3 내란을 저지하고 무도한 대통령의 국회 탄핵을 끌어내는 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새 정부의 첫 사면은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진전, 도약을 위한 관용의 의미를 담아서, 그에 걸맞은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폭넓은 대사면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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