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의 대풍헌] 서열 사회, 그 끝에 남은 것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추천 인사들의 위법 행위와 도덕성 문제가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른다. 그중에서도 국민을 가장 분노하게 하는 것은 '갑질'이다. 국민은 지위나 권력을 앞세워 타인을 억압하는 행위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분노는 단순한 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니다. 오랜 시간 누적된 구조적 불평등과 부당한 위계질서에 대한 반감, 공정과 평등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 느끼는 배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갑질'은 한 개인의 잘못된 행동으로 치부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다. 이는 권위주의적 문화와 제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사회의 계층화를 인정하면서도,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타인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는 상태를 '정의'라고 보았다. 공자 또한 『논어』'안연편'에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를 강조하며,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질서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위계가 존중과 상생이 아닌 권력과 통제의 수단이 되는 순간, 그것은 단지 권위주의일 뿐이다.
권위와 서열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책임과 배려가 동반되지 않으면 철학적 이상과 충돌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회적 지위를, 타인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때, 정의는 사라지고 예(禮)는 권위주의로 전락한다. '갑질'은 바로 이러한 비뚤어진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 상하관계에 익숙한 조직문화, 학연·지연 중심의 인맥 사회, 법과 제도의 불평등한 적용은 갑질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들이다. 특히 기업과 공공조직에 깊게 뿌리내린 상명하복 문화는 강자에게는 복종하고, 약자 앞에서는 군림하는 태도를 내면화시켰다. 이러한 풍토에서 지위는 책임보다 특권으로 여겨지고, 부당한 처우는 정당화된다.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 현실이 반복되면서 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이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특히 청년 세대는 이러한 현실에 민감하다. 노력만으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그들은 점점 냉소적인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는 『통치론』에서 모든 인간은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자연권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선언했다. 이는 평등한 시민사회의 토대이며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물론 현실에서 완전한 평등은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을 향해 제도와 문화를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 특히 입법과 행정을 담당하는 공공권력은 최소한 '형식적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권력 남용은 제도와 정책으로 실효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 공직 임용 과정에서 갑질 전력이 확인된 인사는 명확히 탈락시키는 도덕성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법제화해야 한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모두 갑질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도화하고, 신고 시스템과 2차 피해 방지 체계를 갖춰야 한다. 피해자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생활 속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 초중등 교육과정뿐 아니라, 대학과 직장 등 일상의 모든 공간에서 인권과 존중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실천해야 한다. 인권 의식은 특정 직종이나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상에서 체화해야 할 기본 소양이다.
국회와 정부는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라는 헌법적 가치를 말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갑질을 근절하는 일은 단순히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정의와 공정이라는 사회적 근본 가치를 회복하고, 국민과 국가 사이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갑질은 단지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다. 사회구조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타인을 억압할 권리는 없다. 이 인식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