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딸’ 흥행 공신 이정은·윤경호 “모두가 즐기며 찍은 영화”
한정된 역할 주어졌으나 스스로 기회 만들어내
여전한 연기 갈증 “더 재밌게, 무겁게 쓰이고파”

영화 ‘좀비딸’이 상상했던 만큼, 아니 상상보다 더 강하다. 개봉 사흘만에 100만명을 찍더니 닷새만에 200만 턱밑까지 다가섰다. 주인공 조정석 외에도 밤순 역의 이정은, 동배 역의 윤경호의 활약이 영화 흥행을 이끌고 있다. 충무로 최고의 신스틸러 두 사람이 주고받는 애드립은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임을 상기시킨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배우 이정은과 윤경호는 작품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각각 ‘건강한 가족영화’, ‘휴머니즘이 빛나는 영화’였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정은은 “코로나 유행 이후로 사람들이 누군가 기침하면 공포감을 느끼고 피하지 않나. 우리 영화에서도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는데,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는 거리를 준다”고 말했다.
윤경호는 “휴머니즘 영화에 동참하고 싶었고, 또 저만의 스텝을 첨가해보고 싶었다. 다만 제가 튀지 않고 잘 녹아들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무한한 연기 변신…이정은 “일상성이 가장 큰 무기”
‘좀비딸’에서 이정은은 최근 드라마·시리즈에서 연기한 배역 중 가장 연배가 높은, 15세 손녀를 둔 시골 할머니 밤순을 연기했다. 정박보다 엇박자의 춤을 더 좋아하고 잘 추는 신세대 할머니로 정환(조정석), 수아(최유리)를 휘어잡는 뜨거운 카리스마도 갖췄다.
밤순은 ‘천국보다 아름다운’(JTBC)에서의 영애, ‘조명가게’(디즈니플러스)에서의 유희,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넷플릭스)의 보민과도 결이 다르다. 이정은은 쉼 없이 연기하는데 캐릭터들의 인상은 겹치지 않는다.
“작품을 만드시는 분들이 저라는 배우가 고정되지 않게 배역을 주시는데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미드에서나 중년 여성이 주부나 엄마가 아닌 다양한 역할을 했는데, 이젠 그런 흐름이 한국 콘텐츠에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이고. 저는 기회가 주어지면 빠르게 낚아채는 거죠.(웃음) ‘미스터 선샤인’을 기점으로 서사가 뚜렷한 배역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흐름이 계속 이어지는 중이에요.”
다양한 배역이 주어져도 배우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피상적인 연기만이 나올테다. 이정은은 사실주의적 연기를 위해 “차도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했다.

“촉을 세우기 위해서 사람들을 많이 관찰해요.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은 ‘일상성’에 있는 것 같거든요. 넷플릭스 ‘소년심판’에서 제가 엘리트 부장판사를 연기해야 했을 때도 실제 법조인, 정치인, 교수들을 많이 봤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리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고 싶었거든요.”
‘운수 오진 날’에 이어 ‘좀비딸’까지 두번째 함께 작업한 필감성 감독에 대해선 “스토리텔러로서 어떤 장르도 가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정은은 “가슴 뭉클한 장면, 긴박한 상황 모두 디테일하게 잘 만든다. 감독님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고 했다.
◇악역 넘어 억울한 인상, 이제는 호감형…“무겁게 쓰이고파”
윤경호는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의 한유림 과장 캐릭터가 가진 코믹함을 계승한 호감형 캐릭터 동배로 또한번 눈도장을 찍었다. ‘좀비딸’까지 일련의 작품으로 무해함이 윤경호의 대표 이미지로 떠오르게 됐기에 살인청부업자, 노숙자 등 강한 역할을 해왔던 그의 과거를 알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뿐인가. 빌런을 잡는 경찰 역할도 여러번 해 윤경호는 소위 ‘형사 전문 배우’ 중 한 사람이었다.

윤경호는 “사실 직관적으로 제 얼굴은 악역이 더 어울리는 비주얼”이라며 “수많은 남자 배우들이 아주 잘생긴 게 아니면 형사나 조폭역으로 시작을 많이 한다. 그 숱한 무리 속에서 ‘도깨비’(tvN)를 기점으로 짠하고 사연있는 캐릭터로 바뀌기 시작해 지금처럼 호감형 배우로 돌아서는 길은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을 스스로 분석해달라는 말에 윤경호는 봉준호 감독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영화 ‘군함도’(2017)에서 강제징용자 역할을 위해 30kg을 감량하고 난 뒤 봉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살찐 저를 캐스팅하실래요, 지금의 저를 캐스팅하실래요?”라고 달라진 인상에 대해 의견을 물었던 것.
“그날 의외의 대답을 들었어요. ‘경호씨, 나는 경호씨의 억울한 모습이 좋은 것 같아요.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그 억울한 사람들한테서 묻어나는 억울한 표정이 경호씨 얼굴에서 보여요’ 라고요. 엄청 큰 수확이었죠! 살찌고, 빠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저만의 장점인 ‘억울함’을 찾은 거예요. 억울함이라는 소스에 작품마다 새로운 소스를 배합하면 매번 다양한 얼굴이 그려지더라고요.”

이제는 윤경호의 얼굴만 봐도 친근감을 느끼는 대중이 생겼다. 이에 대해 윤경호는 “이 메이저 무대에서 계속해서 살아남고 발전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중의 사랑을 받진 못하더라도 실험적이고 개성강한 장르에서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요즘은 ‘저를 좀 재미없게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어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갈 길 멀다…다른 배우 연기에 매번 긴장해”
충무로의 명품배우로 불리는 두 배우는 여전히 연기에 대한 깊은 갈증과 예민함을 드러냈다.
윤경호는 형사 역을 수없이 해왔고, 그를 위해 현직 형사였던 큰아버지를 여러번 인터뷰했다. 하지만 다른 배우가 그려낸 새로운 형사 캐릭터를 보면 여전히 감탄하며 분석한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에 이정은 배우 아역인 하윤경 배우를 취조하는 선배 강형사 역의 김종태 배우가 있거든요. 휴게소에서 국수 먹으면서 조용히 취조하듯이 묻는 장면이 있어요. 그걸 몇번을 돌려봤는지 몰라요. 저렇게 조근조근, 잔잔하게 조여오는 형사도 있는데 나는 그간 외형적으로만 뿜어내려고 하지 않았던가. 긴장이 되더라고요.”
이정은은 희극배우 김신영과 배우 김혜자를 코미디 연기의 최고봉으로 꼽았다. “김신영씨는 사람 관찰을 되게 잘헤요. 깊은 통찰이 그분의 코미디를 풍요롭게 만들더라고요. 김혜자 선생님은 여유와 진지함에서 나오는, 힘을 하나도 안 들인 맑은 코미디거든요. 감히 최고봉이라고 평가합니다. 저도 꼭 그렇게 되고 싶어요.”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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