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질나게 보내던 재난문자...공포 속 3만 가구 정전엔 ‘먹통’

원소정 기자 2025. 8. 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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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기대 못미친 재난문자 발송 기준...지자체도 뒷짐

한여름 밤 제주 도심이 갑작스런 정전으로 암흑에 잠겨 3만1000여 가구가 불편을 겪었다. 도로에서는 가로등과 신호등까지 꺼진 가운데, 2차 피해를 막는 재난안전문자가 발송되지 않아 시민들의 혼잡이 이어졌다.

4일 한국전력공사 제주본부에 따르면, 정전은 전날인 3일 오후 9시38분께 제주시 일도동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동쪽 조천읍부터 서쪽 연동까지 제주시 동지역 대부분이 영향을 받았으며, 총 3만1347가구의 전력 공급이 끊긴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제주시 동지역 전체 가구 중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국전력은 "정전 발생 8분 만인 오후 9시46분에 복구가 완료됐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아라동·월평동 등 일부 내륙 지역에서 오후 10시30분이 넘어서야 전력 공급이 재개된 곳도 있었다. 한전 복구 이후에도 개별 건물까지 전기가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기 때문이다.

잠시였지만 시민 불편은 컸다. 가로등과 신호등이 꺼진 도심 도로는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고, 제주시청 인근 번화가에서는 상가 건물에서 쏟아져 나온 시민들로 거리가 붐볐다.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고 귀가하거나 상황을 확인하려는 모습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편의점과 식당 등 상업시설은 영업에 차질을 빚었고, 컴퓨터 작업 중이던 시민들은 저장도 못한 채 작업을 날려야 했다. 아파트 등에서는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며 잠시 외출하려던 주민들이 갇히는 사고도 최소 5건 발생했다.

정전 직후 119에는 관련 신고가 폭주했다. 오후 9시39분부터 27분 동안 298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대부분이 "정전이 맞느냐"는 문의 전화였다.

시민들 사이에선 "이런 상황이야말로 재난문자가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그러나 재난문자는 발송되지 않았다. 발송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현재 행정안전부는 정전 발생 시 '지장 전력'이 120㎿ 이상일 경우 재난문자를 발송하도록 기준을 정하고 있다. 지장 전력은 정전으로 인해 공급하지 못한 전력량으로, 이는 약 6만 가구 동시 정전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번 정전의 지장 전력은 이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46㎿로 확인됐다.

하지만 정전 상황을 직접 판단해 문자 발송이 가능한 지자체 역시 이날 문자 발송에 나서지 않았다.

행정안전부는 2019년부터 정전, 유해화학물질 유출 등 국지적 사회재난 발생 시 지자체가 재난문자를 직접 발송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제주도는 이번 정전 사태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제주도는 "한전으로부터 별도 요청이 있었다면 문자 발송이 가능했겠지만, 정전 규모를 파악하는 도중 복구가 완료돼 발송하지 못했다"며 "향후에는 한전과 긴밀히 협조해, 한전이 문자 발송을 하지 못할 경우 지자체가 대신 발송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제주지역의 전력 공급은 매우 안정적인 상태였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당일 공급 능력은 1682.64㎿, 최대 전력 수요는 1010.23㎿로 예비율은 66.56%에 달했다. 

한전 관계자는 "이번 정전은 변전소 설비 문제로 보이며,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