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청소부 법’에서 얻는 교훈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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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한 아이의 새 일자리를 두고 어른들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아주 고약한 직업인데." "어린애들이 굴뚝에서 질식해 죽는 일도 있었지요." "그건 애들을 굴뚝에서 다시 내려오게 한답시고 짚을 물에 적셔서 땠기 때문입니다요. ··· 진짜 뜨거운 불길만큼 그놈들을 냉큼 내려오게 하는 건 없지요. 게다가 인도적인 조치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녀석들이 굴뚝에 껴서 꼼짝 못하는 경우라도 발을 불로 지져대면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거든요." 이들은 "비용 절감" "장부상으로는 괜찮은데"와 같은 말들도 "몹시 힘주어서 여러 번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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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한 아이의 새 일자리를 두고 어른들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아주 고약한 직업인데.” “어린애들이 굴뚝에서 질식해 죽는 일도 있었지요.” “그건 애들을 굴뚝에서 다시 내려오게 한답시고 짚을 물에 적셔서 땠기 때문입니다요. ··· 진짜 뜨거운 불길만큼 그놈들을 냉큼 내려오게 하는 건 없지요. 게다가 인도적인 조치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녀석들이 굴뚝에 껴서 꼼짝 못하는 경우라도 발을 불로 지져대면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거든요.” 이들은 “비용 절감” “장부상으로는 괜찮은데”와 같은 말들도 “몹시 힘주어서 여러 번 반복”했다. 영국 산업혁명기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실제 19세기 초 영국의 굴뚝 청소부 3000명 중 70%가 어린아이라는 통계가 전해진다. 5~10세가 가장 많았고 빠르면 3~4세부터 일을 시작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구조의 굴뚝 내부를 ‘저렴한 비용으로’ ‘꼼꼼하게’ 청소해 석탄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화재를 예방하기에 어린이 굴뚝 청소부만큼 유용한 게 없다고, 당시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에 나온 것처럼 굴뚝 안에서 ‘업무 태만’을 하거나 혹은 좁은 통로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아이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일부러 연기나 불을 피우다가 사망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은 당연히 어린이 굴뚝 청소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중간 과정은 어땠을까? 영국의 ‘굴뚝 청소부 법(Chimney Sweepers Act)’ 역사를 찾아보다 또 다른 끔찍함을 보았다. 소설이 나온 1837년에는 이미 아동의 굴뚝 청소 노동을 규제하는 법이 존재하고 있었다. 1788년에 처음 제정되었고(8세 이하 금지), 1834년에 14세, 1840년에 21세로 연령을 점차 올렸지만 법은 ‘널리 무시’되었다. 11세 굴뚝 청소부 조지 브루스터의 죽음을 계기로 면허제와 전담 단속반을 도입한 1875년 이후에야 어린이 굴뚝 청소부가 사라지기 시작했단다. 무려 87년이 걸렸다. 첫 솜방망이 법에서 실질적 효력을 지닌 법으로 정착될 때까지. 10세 미만 아이들이 여덟 고비 죽고도 남을 기간이다.
7월29일 ‘산재 근절’을 주제로 한 국무회의 심층토론이 화제가 됐다. 발언 도중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언급하기도 한 이재명 대통령은 회의 내내 각 부처 장관들에게 산업재해 예방과 처벌에 관한 현행 법규의 실효성과 강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법은 있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추락, 끼임, 질식, 깔림 등으로 죽는다. 심지어 같은 일터에서 비슷한 산재 사망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간 유명무실하게 존재했던 각종 규정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어떻게 작동하지 않고 있는지 점검을 재촉하는 대통령의 지시가 일단은 반갑다.
19세기 영국 사람들이 모두 악마는 아니었다. 그들도 후대 사람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일터 환경을 보고 그리 끔찍이 여길 줄은 몰랐을 것이다. 우리의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산업 현장에서 당연시되는 ‘관행’이 훗날 얼마만큼의 ‘흑역사’로 기록될지, 과거의 거울을 통해 현재를 비춰볼 필요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목적은 똑같지 않은가, ‘비용 절감’이라는. 이재명 대통령 말마따나 “차라리 사람이 죽는 위험을 감수하는 게 이익인 사회”를 아직 우리는 벗어나지 못했다는 현실 인식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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