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플라스틱 협약 5일부터 속개…산유국·선진국 주장에 난항 예상

오는 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열린다. 정식 명칭은 유엔(UN) 플라스틱 오염 대응 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INC-5.2)로, 전세계 생물과 육지·해양 환경에 큰 피해를 끼치고 있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을 만들기 위해 2022년부터 시작된 회의다. 지난해 11월 우리나라 부산에서 그 마지막 회의가 열렸으나, 당시 협약 성안에 실패했기 때문에 장소를 옮겨 회의를 속개하는 것이다. 다만 플라스틱의 생산 자체를 감축할 것인지 등 핵심 쟁점들에 두고 그때나 지금이나 산유국과 피해국 등 여러 나라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협약 성안에 난항이 예상된다. 국제 사회에 영향력이 큰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집권 이후 산유국 입장으로 돌아선 것도 변수로 꼽힌다.
‘생산 감축’ 반대하는 산유국들…트럼프의 미국도?
3일 환경부 등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회의의 주요 쟁점은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생산 감축 목표 설정 여부 △일회용품·화학물질 규제 강제 여부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주체와 방법 등 세 가지다.
이중 1차 폴리머 생산 감축은 지난해 부산 협상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다. 1차 폴리머는 모든 플라스틱의 원료다. 욕조에 물이 넘치면 수도꼭지부터 잠가야 하듯이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이 1차 폴리머에 대해 생산 감축 목표량을 정하자는 것이 유럽연합(EU)과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국가 등의 주장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이란 등 산유국들은 1차 폴리머 생산 규제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플라스틱의 98%가 화석연료에서 생산되는 만큼 산유국들이 자국의 플라스틱 제조 산업을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산 규제’보다 ‘사후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 강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대립 구도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입장이 변하면서 협상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전세계 플라스틱 생산량 2위 국가(1위는 중국)지만, 바이든 행정부 때에는 생산 감축을 포함해 강력한 수준의 플라스틱 협약을 주장하는 ‘우호국연합’(HAC·High Ambition Coalition)을 지지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산유국들과 같은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1차 폴리머 생산 규제에 강경하게 반대해, 이 쟁점에 대한 합의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플라스틱 제품 속에 들어있는 화학물질들에 대한 규제 여부도 핵심 쟁점이다. 일회용컵, 빨대, 랩 등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생산에 사용되는 1만6000종이 넘는 화학물질 중 사람이나 환경에 해로울 수 있는 화학물질 규제와 관련해 스위스, 페루, 태평양 군서도서국 등은 구속력 있는 글로벌 금지 목록을 정하고 금지 조처를 협약에 명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산유국들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고해 팽팽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주체와 방법과 관련해서도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 입장 차이가 크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플라스틱 오염에 책임이 있는 만큼 선진국들의 재원으로 다자기금을 새롭게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선진국들은 새로운 재정 의무를 부담하기는 어렵다며 기존에 있던 개도국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구환경금융(GEF)을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만장일치’ 때문에 무산됐던 회의…“다수결 표결해야”
지난해 부산 회의는 마지막 회의였음에도 이 같은 쟁점들에 대해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보통 국제회의에서 ‘만장일치’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회의 당시 ‘1차 폴리머 생산 감축’을 지지하는 나라는 100여국으로 전체의 과반을 넘겼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이란 등 산유국들이 만장일치가 아니란 점을 부각시켜며 적극적인 훼방을 놓은 결과 합의에 이르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만장일치가 안된다면 다수결로 협약을 성안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1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 뽑는 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임성희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 팀장은 한겨레에 “산유국들이 만장일치를 협약 성안을 방해하는 꼼수로 활용하고 있다”며 “이번 제네바 협상에선 회원국들의 다수결 표결로라도 성안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결과, 부산 회의에서 의장이 최종 결과물로 제시한 22쪽짜리 ‘의장 문서’(Chair’s Text)는 250여개의 괄호를 담고 있다. 이번에 제네바에서 속개되는 회의는 바로 이 ‘의장 문서’에서 출발하여, 괄호로 되어 있는 부분들을 구체적인 표현들로 완성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 이번 협약이 플라스틱 오염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바라는 환경단체들은, 현재 비워져 있는 괄호 속에 1차 폴리머 생산 감축, 유해 화학물질 규제, 선진국의 재원 마련 등이 명시적인 형태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플뿌리연대는 지난 6월 ‘우리가 원하는 야심찬 국제 플라스틱 협약 비교문’을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의장 문서 속 괄호가 어떤 문구로 채워져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자료다. 생산 감축과 관련한 내용이 담겼어야 하는 대목은 제6조인데, 현재 의장 문서에서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 등이 명시되어 있지 않고 “생산”, “소비”, “사용” 등 합의의 범주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다. 부산 회의 때 산유국들이 거세게 반발해 애초 초안에서 후퇴한 결과다. 이에 대해 플뿌리연대는 “당사국 총회는 첫 번째 회의에서 이 협약의 부록으로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생산, 소비 및 사용을 줄이기 위한 포부적인 전세계적 목표 및 국가별 목표를 채택한다”를 명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려 화학물질’ 역시 애초 초안에는 제3조로 관련 내용이 들어가 있었으나, 협상 과정에서 제외됐다. 현재 의장 문서에는 제3조의 제목이 단지 ‘플라스틱 제품’이라고만 되어 있다. 이에 대해 플뿌리연대는 제3조의 제목을 ‘플라스틱 제품 및 우려 화학물질’로 바꾸고 그 구체적인 기준들을 명시하는 협약문을 제안했다.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 관련 내용은 현재 의장 문서 제11조에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플뿌리연대는 “선진국 당사국은 개발도상국 당사국, 특히 최빈개도국과 소도서 개발도상국인 개발도상국 당사국이 이 협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도록 지원하기 위한 재정 자원을 주도적으로 제공한다. 다자간 기구, 기관 및 기금을 포함한 다른 출처의 기여는 이 협약의 이행을 지원하도록 권장된다” 등 구체적인 협약문을 제시했다.
이번 제네바 협상은 오는 5~14일까지 10일간 열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정기용 외교부 기후변화대사가 수석대표로 참석하고, 환경부·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실무협상 담당자들이 참여한다. 이번 제네바 속개 회의에서 협약이 성안되면 2026년 전권외교회의(각 나라가 자국 정부의 대표를 파견해 협약에 서명하는 국제회의)에서 협약이 채택되고, 각 나라에서는 비준 절차를 거쳐 법적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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