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여행자] 모두가 같은 방향일 필요는 없으니까

하은정 기자 2025. 8.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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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안다.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우먼센스]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울창한 나무가 드리운 골목길을 헤매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전 11시경, 태양은 이미 작열하고 있었다. 전날 한 번 수업을 들었던 요가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방향 감각이 좋지 않아 길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 기억의 표지판을 심어두는 편이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큰길을 피해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고 싶었다.

요가원 쪽으로 걷고는 있었지만, 내가 가야 할 장소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코끝에는 땀이 맺히고, 등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요가 수업을 포기하고 되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 무릎 길이의 자주색 원피스를 입고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인을 마주쳤다. 그녀의 이름은 로즈. 요가원의 주인이었다.

요가원 근처 시장에서 길을 잃고 있던 나를 발견한 로즈는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요가원 문을 열어주었고, 덕분에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어느새 나는 로즈가 가장 아끼는 학생 중 한 명이 되었다. 미국 출신인 로즈는 치앙마이를 자신의 고향처럼 여기며, 요가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었다.

나는 치앙마이 올드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작은 방을 얻었다. 그리고 매일 한 번 요가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주로 혼자 보냈다.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로즈는 나에게 다른 학생들을 소개해주었지만,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활기찬 요가원의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아침엔 요가를 하고, 숙소 앞 채식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저녁엔 산책을 하는 일상.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를 한 달쯤, 내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일본인 유리였다. 그녀는 내 이름을 묻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으러 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처음부터 친근하고 따뜻한 인상을 지녔던 유리 덕분에, 나는 요가 선생님을 비롯해 요가에 진심인 몇몇 무리들과도 곧 친구가 되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건 단연 요가 수업이었다. 키가 크고 에너지가 넘치는 라틴계 요가 선생님 바리는 유쾌하게 수업을 이끌었다. 그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강한 존재"라며, 우리를 요가의 세계로 힘차게 밀어넣었다. 두 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수업은 너무 힘들었지만, 그 덕에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바리 역시 미국인이었지만, 오래전부터 치앙마이에 터전을 잡고 요가를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유리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배운 비건 디저트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치앙마이 요가인들이 좋아하는 에너지볼(견과류를 갈아 동그랗게 만든 디저트), 비건 케이크, 비건 쿠키 등을 만들어 팔았고, 급기야는 비건 디저트 수업을 열 정도가 되었다. '여행하며 디저트를 만들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유리는, 지금도 자신이 꿈꾸던 삶을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녀의 작업을 흠모하며 재료 준비와 설거지를 도왔고, 결국 유리의 뒤를 이어 현재 인도에서 케이크와 빵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평범하지 않지만 단단한 삶의 풍경

어느덧 치앙마이는 친구들이 사는 도시가 되었고, 그 다음해에도 자연스럽게 같은 시기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새로운 여행자들과도 만났는데, 그중에는 유리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나나미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치앙마이 근교에서 열리는 축제에 커피와 팬케이크를 팔기 위해 시골에서 각종 살림살이를 한가득 가져왔다.

나나미 부부는 외모부터 예사롭지 않았고, 간단한 도구만으로도 훌륭한 커피를 만들어냈다. 숲속 축제장에서 텐트를 치고, 붉은 천에 수를 놓아 만든 간판을 걸었다. 나무로 불을 지펴 직접 로스팅한 커피와 인도식 홍차인 '짜이', 그리고 계란을 듬뿍 넣어 두툼하게 구운 팬케이크가 메뉴였다. '이렇게 느리게 만들어서 장사가 되긴 할까?' 싶었지만, 축제에 온 사람들도 조급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서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걸 즐기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직접 커피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려보았다. 그 커피를 맛본 나나미 부부는 "당장 카페를 열어도 되겠다"며 나를 칭찬했다. 내가 "돈이 없어"라고 하자, 그들은 웃으며 말했다. "돈 없이 시작하면 돼요. 커피 그라인더와 원두, 커피 포트만 있으면 되잖아요." 왜 이런 단순한 생각을 못했을까. 카페는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내게, 그들의 말은 하나의 희망으로 자리 잡았다. 그 뒤로 나는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했고, 지금은 인도에서 커피를 만들어 팔고 있다.

이렇듯 세상엔 참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확고한 신념으로 살아가기에 남들이 보기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게 그들의 삶은 동경이고, 내가 닮고자 하는 삶의 한 모습이었다.

지금도 나는 해마다 치앙마이에서 요가 수련을 하고 있다. 그리고 치앙마이에서 만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나처럼 쉼과 재정비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요가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글쓴이 최윤성 '망고 요가 트래블'의 1인 여행 기획자. 국내외 요가 여행을 진행하고, 틈틈이 산티아고 순례길 인솔을 한다. 겨울에는 인도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며 생활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하은정 기자 haha@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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