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그리움 / 구석본

송태섭 기자 2025. 8. 4.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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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압축과 디테일한 시간의 궤적은 서정 시법의 새로운 방식이다.

동일성의 시학과 예민한 의식은, 그 시의 행간과 연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직조(織造)한다.

시인이 그리움을 호명하는 사람이라면, 애인은 그 말을 잊게 하는 존재다.

'그리움의 미학'은 시공을 초월해 예술의 가장 깊은 사유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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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 구석본

나의 애인은 언제나 만 리 밖에 서 있다/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한다, 하면/ 사랑 밖에 서 있고/ 그립다, 하면 그리움 밖에 서서/ 불빛처럼 깜빡이며/ 나의 가슴을 깨우고 있다/ 나의 그리움이 만 리까지 쫓아가면/ 또, 만리 밖에 서는 나의 애인아/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이승에서 풀리지 않는 그리움 하나뿐인 것을/ 만 리 밖에서 보내는/ 불빛 같은 그대 신호로 비로소 안다

『지상의 그리운 섬』(문학세계사, 1985)

시적 압축과 디테일한 시간의 궤적은 서정 시법의 새로운 방식이다. 동일성의 시학과 예민한 의식은, 그 시의 행간과 연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직조(織造)한다. 좋은 서정시가 다 그렇듯, 사랑과 이별은 울음에 고요히 귀 기우린다. 간결하고 명징한 언어야말로,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어떤 무늬를 짠다. 그의 서정은 연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까맣게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하여 준다. 열린 문을 통해 웅숭깊게 구현한 그의 행간은, 긴장과 이완을 통해 세계를 불러들인다. 언어를 통해 자신의 호흡으로, 그 이미지와 의미들을 새롭게 만지고 있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그의 메아리는, 리듬과 함께 진실에 닿는다. 시는 고통스런 현실을 언어로 씻어내는 소통의 공간이자, 자기 검열의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나'와 '내면'과의 은밀한 대화의 장이자, 고백의 성소이기도 하다. 좋은 시는 읽는 순간 가슴을 움직인다. 피상적인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한다. 자신이 직접 체감한 날 것의 언어야말로, 행간의 생생한 느낌을 전할 수 있다. 구석본(1949~, 경북 칠곡 출생)의 「그리움」은, '애인'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부르며 심연에 닿는다. 그는 존재론적 음영을 바탕으로 '너머'의 세계를 노래한다. 아득한 거리와 "떨리는 목소리" 속에 그의 "사랑"은 아픔이 된다. 어둡고 그늘진 먼 곳에 그의 "애인은 언제나 만 리 밖에 서 있다". 그의 아이러니는 가닿을 수 없는 곳에서 부재의 형식이 된다. 시인이 그리움을 호명하는 사람이라면, 애인은 그 말을 잊게 하는 존재다. "불빛처럼 깜빡이며/나의 가슴을 깨우는" 그것은, 어쩌면 '기억과 망각 사이' 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실과 상처는, 혹독한 타자가 된다. '그리움의 미학'은 시공을 초월해 예술의 가장 깊은 사유를 새겼다. 결핍의 아름다움은 환유의 시법으로 재구성된다. 그리움은 과거의 감정에서 촉이 터, 현재를 건너 아득한 미래의 예감이 된다. 이 시가 울림이 큰 것은 여백의 미(美) 때문이다. 구석본의 떨림은 "이승에서 풀리지 않는 그리움"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의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온 심장으로 느껴야 한다. 그의 그리움은 미완성이기에 더욱 애틋하다. 태초의 누군가를 부르는 저 애절한 '그리움'은, 사라진 존재에 대한 초혼인지도 모른다.

김동원(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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