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를 기록한 목소리, 죽음 너머 증언으로 남다

최명진 기자 2025. 8. 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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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아멜리나 유고 전쟁일기 ‘여성과 전쟁’
드론 조종사부터 지뢰 제거 조사관까지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여성들 기록 남겨
2023년 6월27일, 우크라이나 크라마토르스크. 작가들이 모여 있던 식당에 러시아군 미사일이 떨어졌다. 그로부터 나흘 뒤, 서른일곱의 작가 빅토리아 아멜리나가 숨을 거뒀다.

전쟁범죄를 추적하며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를 끝까지 누볐던 작가 빅토리아 아멜리나의 유작 ‘여성과 전쟁’(파초刊·이수민 옮김)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아멜리나는 생전 조지프 콘래드 문학상을 수상한 우크라이나 소설가이자 시인, 동화작가, 에세이스트, 인권운동가였다.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그는 작가에서 전쟁범죄 조사원으로 변모했다. 비정부기구 트루스하운드에서 전쟁범죄 조사를 위한 훈련을 받은 뒤, 아멜리나는 익숙한 소설 대신 생존자들의 증언을 담은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도 그는 기록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고문과 학살을 자행한 가해자의 이름뿐 아니라, 그에 맞서 싸운 평범한 시민들의 이름 또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전쟁일기를 집필해 나갔다.

이 책에는 드론 조종사가 된 인권변호사, 야간 열차에 실린 문학관 자료를 지키기 위해 화물칸에서 보초를 선 이, 지뢰 제거를 택한 조사관, 고문을 이겨내고 전장으로 돌아온 생존자 등 수많은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아멜리나는 전쟁 범죄 현장을 직접 누비며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진실들을 기록해나갔다.

러시아군에 납치돼 고문당하고 살해된 동화작가 볼로디미르 바쿨렌코의 사건을 조사하며, 그가 납치 하루 전 정원에 묻어둔 일기를 찾아냈던 에피소드는 책 속에서도 중요한 장면으로 남는다.

그는 이 죽음을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닌, 소련과 러시아의 압제 아래 반복돼온 우크라이나 예술가 집단 숙청의 연장선에 놓고 바라본다.

1937년 산다르모흐숲에 묻힌 예술가 289명, 1965년 또 한 번 숙청된 수많은 저항 예술인들, 그리고 2022년의 바쿨렌코, 2023년의 아멜리나.

이 책은 이 죽음들이 우크라이나 민족의 예술과 정체성을 수호하려 했던 사람들의 연쇄된 희생이라 말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선택의 시간’, ‘나의 길을 찾아서’, ‘전쟁을 살아가다’, ‘해답과 승리’라는 제목 아래 아멜리나와 그녀가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로 빼곡히 채워졌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아멜리나는 참상을 기록하면서도 전시 상황 속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책 말미에는 ‘에필로그를 대신하는 시’, ‘편집 후기: 빈 페이지들’, ‘부록: 조각들’이 수록됐다.

작품 서문을 쓴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책은 그녀의 목소리다. 생생하고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그녀가 지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책은 2025년 오웰상(에세이 부문), 2024년 볼테르상 특별상을 수상하며 문학성과 기록의 가치를 동시에 인정받았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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