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는 감각의 지도, 그 위를 항해하는 네 개의 시선
김선우·정승원·문형태·정성준…회화 언어로 풀어낸 자아·기억·관계·공존의 서사




삶의 방향을 잃은 도도새는 항해를 시작하고, 회색빛 도시에선 동물들이 유쾌한 공존을 꿈꾼다.
광주시립미술관이 선보이는 현대미술기획전 ‘그리고, 하루’는 삶의 내면과 외면을 유영하는 네 명의 작가를 통해 개인의 하루가 어떻게 이어지고 겹쳐지는지를 사유하는 예술적 여정이다.
오는 11월23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3·4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김선우, 정승원, 문형태, 정성준 4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감성과 조형 언어로 일상과 감정, 관계와 생태라는 키워드를 풀어낸다.
전시는 총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자아’에서 출발해 ‘기억’과 ‘관계’를 지나, ‘공존’의 지점으로 나아가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따른다. 작가들의 작업은 서로 다른 시선이지만,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하루의 감각을 조형적으로 엮어낸다.
김선우의 작업은 현실에 안주하며 날지 못하게 된 도도새의 항해에서 출발한다. 도도새는 정체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은유이자, 동시에 가능성과 자유의지를 품은 존재로 그려진다. 작가는 이 도도새들이 ‘사유의 배’를 타고 떠나는 상상적 항해를 통해, 고정된 현실에서 벗어나 내면의 감각을 회복하는 여정을 제시한다. 여기서 ‘피안(彼岸)’은 단순한 이상향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다시 바라보고 질문하게 만드는 감각의 지점으로 읽힌다. 김선우는 도도새를 이 항해의 동반자로 설정해, 관람자 또한 자신만의 피안을 향한 여정을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정승원은 소소한 일상의 단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실크스크린 판화기법을 통해 같은 장면을 색과 질감으로 다양하게 반복하며, 기억이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유동적이고 복수적인 층위임을 드러낸다. 화면 속 풍경은 독일 유학 시절의 일상, 가족과 보낸 여름날, 아쿠아리움을 찾았던 경험 등 작가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관람자에게는 보편적인 감정의 장면으로 다가온다. 반복과 중첩의 방식은 기억이라는 감각의 작동을 섬세하게 시각화하며, 삶 속 잊고 지냈던 온기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문형태는 관계 속 감정의 층위와 양가성을 독창적인 조형언어로 풀어낸다. 화사한 색채와 감각적인 마티에르 위에 익숙한 상징과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감정의 복합적 풍경을 구성한다. 특히 작가는 감정의 코드를 숫자로 번역해 서사의 구조를 만든다. 1은 자아, 2는 관계, 3은 가족, 4는 사회, 5는 고독을 의미하며, 이는 각자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열린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의 작업은 하나의 회화이자, 관계로 얽힌 삶의 단면을 기록한 감성적 지도처럼 느껴진다.
정성준은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동물들을 도시의 주체로 등장시킨다. 이 동물들은 쓰레기를 치우고, 서로를 위로하며, 인간을 대신해 더 나은 세상을 실천한다. 회색 톤으로 그려진 도시는 생기를 잃은 현실을 상징하지만, 그 안에서 유쾌하게 살아가는 동물들은 작고 구체적인 실천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작가는 비극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유머와 따뜻한 상상력을 통해 오늘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의 유토피아는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다.
윤익 광주시립미술관장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관람자들이 자신의 하루를 새롭게 그려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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