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시론] 가상과 현실 사이의 새로운 시각- 서재명(마산대학교안경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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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의 아르떼뮤지엄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만약 색맹을 가진 사람이 특정 AR( 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필터를 사용했을 때 색채를 정상인보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인식한다면 혹은 녹내장으로 시야결손을 겪는 환자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AR 환경에서만큼은 완전한 시야와 함께 더 높은 시감도(㏈)를 경험할 수 있다면 과연 누가 '진짜 정상적인' 시각만을 고집할까? 공감각이라 불리는 감각들의 협업이 우리를 더 깊은 몰입으로 이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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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의 아르떼뮤지엄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거대한 벽면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고휘도 입자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물결의 이미지와 파도 소리, 사방에서 떨어지는 꽃비와 그 공간조차 가득 메운 꽃향기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실제 비를 맞지는 않지만 사진 속 나는 비를 맞고 있고 나를 제외한 주변의 전부를 빨아들이는 회오리도 경험할 수 있었다. 좁은 공간의 벽에 거울을 가득 배치해 공간을 확장시키고자 한 그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흘러나오는 탄식은 어쩔 수 없었다. 가상현실 분야의 ‘현실과 가상은 종이 한 장 차’라는 홍보 문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눈 앞의 집 한 채를 생각해보자. 내가 보는 집의 규모와 색상, 느낌이 다른 사람과 동일할까? 집이라는 실체는 물리적으로 동일하지만 각자가 받아들이는 인상은 분명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본다(seeing)’는 것은 단순히 눈이 포착한 이미지를 뇌가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망막이 포착한 이미지는 암호화되고 뇌에서는 가장 그럴듯한 집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복호화하여 추측하고 보정까지 하는 것이다. 즉, 이미지 최적화에 필요한 타 기관의 감각을 수집하고 과거의 경험과 기억까지 더해 가장 ‘현실적’이라고 여겨지는 이미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을 위한 실체 체크리스트(Reality checklist)에 등장하는 질문들이 이젠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이것은 지금 내 심리적 상태와 무관한 절대적 실체일까? 이것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까?
이런 맥락에서 요즘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라 불리는 젊은 세대들의 현실 인식은 우리 기성세대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모니터와 함께 성장한 그들에게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불분명하다. 동굴 속 죄수들에게 벽에 비친 그림자가 현실의 전부였듯이 지금 우리도 LED 스크린에 투사된 디지털 영상들을 또 다른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플라톤 시대와 달리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현실은 그림자와 실체라는 단순한 이진법이 아니라 여러 계층의 현실들이 서로 중첩되며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술계는 이미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현실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우려스럽지만 시각재활 관점에서는 흥미로운 지점들도 있다. 만약 색맹을 가진 사람이 특정 AR( 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필터를 사용했을 때 색채를 정상인보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인식한다면 혹은 녹내장으로 시야결손을 겪는 환자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AR 환경에서만큼은 완전한 시야와 함께 더 높은 시감도(㏈)를 경험할 수 있다면 과연 누가 ‘진짜 정상적인’ 시각만을 고집할까? 공감각이라 불리는 감각들의 협업이 우리를 더 깊은 몰입으로 이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섯 개의 감각기에서 두 개 이상이 동시에 활성화될 때 현실을 재구성하려는 뇌의 본능적 에너지 소비가 감소된다. 이것은 어쩌면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 감각의 본질적 욕구에 대한 응답일지 모르겠다.
1999년 영화 ‘매트릭스’는 우리에게 질문을 했다. 디스토피아인 현실계와 유토피아인 가상계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택할까. 하지만 이제는 그 질문 자체가 낡은 이분법일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가상이 서로를 뒤엉켜 새로운 계층을 실험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자택일이 아닌 선택적 수용이 아닐까. 아르떼뮤지엄에서의 그 생생했던 순간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거기서 내가 만난 것은 가짜도 진짜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실재였으니까.
서재명(마산대학교안경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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