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케데헌’이 말하는 것, 말하지 않은 것

오광수 기자 2025. 8. 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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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빌보드 ‘핫100’ 윗자리
가장 초국적·상업적인 K-팝 ‘국민 문화’로 자리매김, ‘왜’

‘한류(韓流)’는 말 그대로 ‘한국의 유행’, 즉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인 확산’이다. 최근에는 K-팝(케이팝), K-드라마, K-영화 등 장르나 콘텐츠를 지칭하는 용어로 대체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한류’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한류’의 ‘한’은 애초 한국이란 뜻이 아니라 ‘찰 한’의 ‘寒’이었다. 그 ‘한류(寒流)’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던 1990년대 초 한국 대중문화의 유입을 경계했던 데서 비롯됐다. 한류(韓流)는 우리 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는 한류를 일시적인 유행 정도로 치부한 적도 있다. 장기적인 파급력은 없을 것으로 전망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2000년대 초반 드라마 ‘겨울연가’(2002)와 가수 보아(BoA)가 일본 등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다.

현재 한류를 주도하는 장르는 단연 케이팝이다. 케이팝은 초국적 문화콘텐츠산업으로 ‘진화’한 결과다. 걸그룹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은 케이팝 역사에서 상징적 사건이자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좌절이기도 했다. 원더걸스가 2009년 ‘Nobody’로 미국 빌보드 ‘핫 100’에서 받은 성적표는 ‘76위’였다. 케이팝 최초의 기록인데,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그렇지만 원더걸스는 케이팝의 세계시장 진출 길을 열었다. 또 케이팝이 글로벌 무대에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원더걸스의 도전과 실패는 이후 2012년 싸이(PSY), 2016년 블랙핑크, 2017년 BTS가 잇따라 세계시장에서 성공하는 데 디딤돌이 됐다. 블랙핑크는 글로벌 음악 산업과 협업하면서 다국적 멤버 조합으로 ‘하이브리드 모델’을 실현했다. BTS는 현지화에 의존하지 않고 SNS로 전 세계 팬덤과 직접 연결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케이팝 ‘괴물’이 지난 6월 말 등장했다. 넷플릭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다. 케이팝 아이돌을 소재로 하는 최초의 외국 제작 애니메이션이다. 사실상 뮤지컬 영화다. ‘어떤 케이팝보다 케이팝답다’는 말까지 나온다. ‘케데헌’ OST의 인기는 발매되자마자 폭발적이다. 애니메이션 속 걸그룹 헌트릭스(Huntrix)가 부른 ‘Golden’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빌보드 ‘핫 100’ 차트 4위에 올랐다. 극 중 사자 보이즈 (Saja Boys)의 ‘YOUR IDOL’은 14위, ‘HOW IT’S DONE’은 23위, ‘SODA POP’ 25위, ‘What It Sounds Like’ 43위, ‘TAKEDOWN’의 헌트릭스 버전이 51위, 트와이스(TWICE) 버전은 90위에 각각 올랐다. ‘커버(다시 부르기) 열풍’까지 불었다. 케데헌의 OST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고, 고음의 창법이 돋보이는 ‘Golden’이 그 대상. 지난달 23일 1세대 걸그룹 아이돌 S.E.S.의 메인 보컬 출신인 바다가 자신의 채널에 ‘Golden’ 커버 영상을 올리며 ‘원조 헌터스 등판’을 알렸다. 걸그룹 에이핑크의 정은지, 아이브의 안유진, 싱어송라이터 권진아, 걸그룹 마마무의 솔라, 다비치의 이해리, 보이그룹 슈퍼주니어 메인 보컬 출신 려욱, 그룹 어반 자카파의 권순일, 가수 박기영과 에일리도 ‘Golden’ 커버에 동참했다. ‘고음 끝판왕 인증’ 릴레이를 벌인 것이다. MBC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2011)의 케데헌 버전을 보는 듯하다.

케이팝의 나이는 어느덧 서른 살이다. 케이팝에는 ‘찬사’와 ‘비판’이 늘 함께한다. 케이팝은 ‘노예계약’을 제쳐두더라도 우리의 입시지상주의를 닮았다. 수험생 중 극소수만 ‘좋은’ 대학에 간다. 어느 개그맨이 외치듯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 같은 이치다. 케데헌의 OST ‘Golden’을 작곡하고 직접 부른 이재(EJAE·김은재)는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이다. 이를 두고 ‘SM에서 데뷔하기가 이렇게도 힘들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신현준 교수는 케이팝을 ‘역사 없는 지리’, 즉 ‘로컬 역사가 없는 글로벌 지리’로 규정한다. 이는 케이팝 글로벌 소비의 지리적 범위가 커질수록 그 생산지의 역사적 맥락의 중요성은 더욱 작아진다는 의미다. ‘역사가 없다’는 것은 상징적인 측면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케데헌의 OST 상당수가 미국 빌보드 ‘핫 100’ 상위권에 올랐다는 소식에 우리는 뿌듯함을, 자부심을 느낀다. 케이팝이 초국적 문화 변용임에도 한국에서는 국력의 결과물과 동일시한다. 케이팝에 대한 미디어의 애국적인 관심이나 케이팝 제작자와 아이돌 스타들의 국위 선양에 대한 강한 마인드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에 관해 이동연 교수는 케이팝이 가장 초국적이고 가장 상업적이어서 역설적으로 ‘국민문화’의 형태를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케데헌 현상’을 보면서 ‘삼촌팬’으로서 문득 궁금해진 게 있다. ‘국민’ 걸그룹 뉴진스는 요즘 무얼 하고 있을까. 뉴진스의 하니가 불러 일본 도쿄돔을 뒤집어 놓은 ‘푸른 산호초’를 듣고 싶어졌다.

오광수 편집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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