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필수의료, 공공시스템만으로 완벽할까

정진우 동아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진료부장 2025. 8. 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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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파밀'이라는 약이 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부정맥을 치료할 때 우선순위가 높은, 소위 필수약이다.

에토미데이트는 혈압이나 뇌압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서 상태가 불안정한 중환자를 치료할 때 매우 유용한 약제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공급에 나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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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동아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진료부장

‘베라파밀’이라는 약이 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부정맥을 치료할 때 우선순위가 높은, 소위 필수약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 약이 품절돼 처방할 수 없었다. 실은 이미 지난해 7월부터 공급이 중단된 상태였고, 그동안은 재고로 버텨왔던 것이다.

베라파밀만의 문제가 아니다. 급성 알레르기 환자에게 사용하는 페니라민 주사제도 공급이 불안정해, 수시로 구할 수 있는 회사 제품으로 바꿔 처방해야 한다.

거래 규모가 크고 협상력이 있는 대학병원은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의원급에서는 아예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품절을 넘어 아예 허가를 취소하고 한국시장에서 철수하는 약품들도 많다. 올해 1월에만 229개 품목이 허가를 취하했다.

응급 상황에서 기도에 튜브를 삽관할 때 사용하는 에토미데이트 주사제도 오는 11월부터 공급 중단이 예고됐다. 에토미데이트는 혈압이나 뇌압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서 상태가 불안정한 중환자를 치료할 때 매우 유용한 약제다. 에토미데이트가 최근에 마약류로 지정된 것이 계기인데, 결국 마약류 관리에 요구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약처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프로포폴을 대신 사용할 수 있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로포폴은 혈압을 심하게 떨어뜨리기 때문에 상태가 불안정한 환자에게는 적절하지 않다. 환자 상태에 따라 최적의 약을 선택하는 것이 의료의 기본인데, 과연 식약처에 이 인식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약값은 제약사와 건강보험공단의 협상을 통해 정해진다. 그런데 회사와 직원 사이의 ‘연봉 협상’을 한다고 할 때 대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약학정보원 홈페이지에서 베라파밀 주사제의 약가 이력을 검색해보면, 2017년에 740원이던 것이 2024년에는 700원으로 오히려 내려갔다. 같은 기간 시간당 최저임금은 6470원에서 9860원으로 52% 올랐다.

페니라민 주사제는 2017년에 147원으로 정해진 뒤 지금까지 변동이 없다. 무균 상태에서 엄밀한 제조 공정을 거쳐야 하는 주사제가 이런 가격에 공급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지금은 베라파밀을 사용할 수 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공급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센터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기관으로, 원래는 수요가 적어 국내 공급망이 형성되기 어려운 희귀약을 공급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흔히 사용해야 할 약조차 시장에서 철수하자, 센터가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센터가 공급하는 베라파밀 주사제의 가격은 4850원으로, 공급 중단 직전 가격의 7배에 달한다. 게다가 센터 공급 의약품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필수 의약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조혈관, 생체검사용 도관, 내시경 담석 제거술용 바스켓 등 치료재료도 공급이 중단되거나 극히 제한적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제는 의료계 전문지를 넘어 주요 일간지에도 실리고 있다. 중증·응급 진료 분야의 인력 부족 문제 역시, 근본적으로는 장기간 지속된 수가 통제로 인해 비급여 영역과의 격차가 누적된 결과다.

필수의료는 민간에 맡겨둘 수 없고 공공이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2022년 개정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서는 응급의료기관 지역외상센터 지역암센터 등 광범위한 필수의료 기관들을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으로 지정했다. 민간은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베라파밀 주사제의 사례에서 보듯, 민간이 하던 일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공공 시스템이 대체했을 때, 그 비용은 결코 싸지 않다. 민간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가격을 통제하고, 공공이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이를 대신 떠안는 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

환자에게 필요한 약이 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미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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