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는 누구...핵심 지지층 요구에 발빠른 반응, 아웃사이더 한계 극복

고한솔 기자 2025. 8. 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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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더불어민주당의 새 사령탑이 된 정청래 대표는 '노무현 탄핵 역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의원이 된 뒤엔 범주류인 친노무현·친문재인·친이재명계로 분류됐지만 특유의 아웃사이더 기질로 인해 '이너서클'에는 속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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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발언’ 탓 부침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새 사령탑이 된 정청래 대표는 ‘노무현 탄핵 역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농성을 주도한 일로 2년형을 선고받은 학생운동권 출신이지만, 이른바 서울 주요 대학 출신이 주축인 민주당 86그룹에선 비주류였다. 국회의원이 된 뒤엔 범주류인 친노무현·친문재인·친이재명계로 분류됐지만 특유의 아웃사이더 기질로 인해 ‘이너서클’에는 속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당원 등 핵심 지지층의 요구에 남보다 한발 앞서 반응하는 모습으로 자기만의 정치 영역을 개척해왔다. 제도권 언론과는 거리를 두면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을 통한 지지자들과의 직접 소통으로 정치적 인지도를 높여왔다. 2002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활동을 시작하고 이듬해 인터넷 중심 시민정치운동 단체인 ‘국민의 힘’ 초대 대표를 지냈는데 이때가 온라인 중심의 소통 방식을 체화한 시점으로 꼽힌다. 시류를 빨리 읽어내는 그의 정치 스타일을 두고 한 재선 의원은 “사후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먼저 판을 짜고 강력한 화법으로 주도권을 쥐고 갈 줄 안다”고 평가한다.

정치적 부침도 겪었다. 2015년 같은 당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공갈 친다”고 비꼬았다가 당직 1년 중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2016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시절 ‘거친 발언’ 등을 이유로 컷오프(공천 배제)를 당했으나 다른 공천 탈락자들과 ‘더컸유세단’을 꾸려 당의 총선 승리에 기여했고21대 총선에서 부활했다. 21대 의원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 여야 대결의 최전선에 섰다. 12·3 내란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될 때는 국회 탄핵소추단장을 맡았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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