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학원 수강생, 얼떨결에 강사가 되다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5. 8. 3. 14:4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강준수(가명) | 게임 원화가

다들 코로나19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많은 분께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본 오프라인 세계 또한 암담했습니다. 근처 상가가 줄지어 폐업하고 임대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었습니다. 저도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잘렸습니다. 한편 온라인 세계에선 새로운 기회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엔 눈앞이 깜깜했죠. 수입원이 없어 최저 생활 유지가 불가능해졌으니까요. 근로장려금과 코로나19 지원금으론 두달도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제가 수강하던 그림학원에서 제안이 오더군요. “강준수씨, 학원 강사 안 해볼래요?”

예전 같았으면 터무니없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림 학원 강사는 게임업계에서 대형 프로젝트의 말석에라도 끼어본 사람들이 하는 직업이었거든요. 취업도 못 해본 원화가 지망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까지 온 건 코로나19 때문이었습니다. 전 학원을 거의 안 다녀서 몰랐는데요, 한국의 사교육열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자녀들 태권도 학원이나 피아노 학원을 못 보내니 온라인 그림 학원에 등록하더랍니다. 기존 강사님들 스케줄은 진작 꽉 찼고, 학원은 신규 강사가 절실했습니다. 물론 저도 돈벌이가 절실했고요.

‘예비 강사반’ 공유 채팅방에 초청받았습니다. 좀 잘 그린다 싶은 수강생들 전부 모아둔 반이었죠. 열명 중 딱 두명만 뽑는다고 하니 다들 죽어라 그렸습니다. 그때만큼 그림에 열중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전 불리한 입지에서 시작했습니다. 학생 절대다수가 일본 애니메이션 그림체, 업계 말로 ‘캐주얼체’를 선호했습니다. 6등신에 얼굴이랑 눈은 큰데 코랑 입이 거의 안 보이는 그 그림체요. 반면 저는 실사에 캐주얼이 섞인 ‘반실사체’를 주로 그려왔습니다. 그림체를 바꿔야 했죠. 생존의 문제가 되니까 특기며 취향 따질 여유가 없더군요. 펜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당시 하루 루틴이 28시간이었습니다. 20시간 그림 그리고, 8시간 자고. 그렇게 반년 동안 그림만 그렸습니다. 중간에 생활비 떨어져서 휴대전화와 그래픽카드까지 팔아가면서 말입니다. 폐인처럼 보낸 시간은 결국 보답받았습니다. 강사로 뽑힌 겁니다. 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없어 걱정했습니다만 전혀 상관없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실력만 보고 강사를 선택한다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취미반’으로 모집을 시작했습니다. 수강생은 금방 모였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좋아할 그림체를 연구한 보람이 있었죠. 첫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수강생은 대부분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 특이 사항으론 대부분 트위터(엑스)를 했습니다. 수강생들로부터 미리 받은 그림 파일을 화면 공유 프로그램으로 띄워놓고 고칠 곳을 얘기해주는데, 한 수강생이 말하더군요. “선생님, 피드백 말고 직접 고쳐주시면 안 돼요?”

그렇습니다. 취미반에서 그림은 곁가지였습니다. 수강생들은 멋진 그림을 그릴 실력보단, 멋진 그림으로 얻는 ‘좋아요’, ‘리트위트’, ‘팔로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경력이 상관없다는 말은 이 뜻이었던 겁니다. 물론 이런 행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는 법이니까요. 다만 제가 생각한 ‘강사’와는 달랐습니다. 실력 향상을 돕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편집하는 사람, 이를테면 인스타그램에 올릴 바디 프로필 사진 찍어주는 사진사였던 셈이죠. 차라리 그뿐이었으면 나았으련만, 개중엔 일러스트레이터를 진지하게 지망하는 수강생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저도 취업을 못 했는데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저 “취업반 등록 도와드릴게요” 정도 말밖에 할 수 없었죠.

한주에 강습은 4시간씩 4번만 하면 됐지만 실제 업무는 더 많았습니다. 평일, 휴일 안 가리고 수강생들의 피드백 요청에 응답해야 했고, 학원에서 시키는 홍보 업무도 해야 했으니까요. 일 자체에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돈은 잘 벌었습니다. 매달 아르바이트 반년치 소득이 들어왔거든요. 만족스러운 삶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벌고 싶었지, 남 그림 손보면서 돈 벌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카를 마르크스가 그랬던가요. 노동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고요. 최저임금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현업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제 그림이 단지 혼자만의 창작물이 아니라, 실제로 서비스하는 게임의 일부분으로 쓰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고민을 오래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전면 등교 시행과 함께 수강생들이 왕창 빠져나가기 시작했으니까요. 꽉 찼던 수업 인원이 석달 만에 절반 넘게 비었습니다. 강사를 더 할 이유가 없어진 겁니다. 미련 없이 사표를 쓰고 서울 상경을 결심했습니다. (계속)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