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박근혜·이재명 ‘저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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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저도(猪島)엔 1954년 이승만 정부 시절 건립된 대통령 전용 휴양시설이 있다.
해변 모래에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귀를 남겼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일가족이 저도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화제가 됐었다.
다만, 부녀 대통령은 저도에서 정서적 추억을 많이 쌓았으나 이 대통령은 그럴 여유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도에서 추억에만 젖어 있지 않고 집권 초반의 국정 방향을 구상하는 데 더 치열하게 노력했다면 정치적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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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저도(猪島)엔 1954년 이승만 정부 시절 건립된 대통령 전용 휴양시설이 있다. 1972년 박정희 정부가 대통령 공식 별장으로 지정하면서 바다의 청와대란 의미로 '청해대'라고 불렀다. 거제가 고향인 김영삼 대통령이 지정을 해제해 지금은 국방부가 군 휴양시설로 관리하고 있으나 여전히 대통령들의 단골 휴양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3년 취임 첫해 여름 저도를 찾았다. 해변 모래에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귀를 남겼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일가족이 저도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화제가 됐었다.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영수 여사를 잃은 뒤 이듬해 8월 청해대에 머물며 아내를 그리는 시 '일수'(一首·한 줄의 시)를 지었다. 아내와 함께 거닐던 곳에 혼자 와보니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진다는 내용이다.
부녀(父女) 대통령 가족의 추억이 깊숙이 스며 있는 그곳에 이재명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갔다. 주말인 2일부터 저도에 머물고 있다. 아마 다른 휴가지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의 휴양시설은 청해대가 사실상 유일하다. 이전엔 전두환 정부가 대청호 호수 변에 지은 '청남대'(남쪽 청와대)가 있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북도에 반납, 일반에 개방했다.
그런 사정 등으로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이 세월을 뛰어넘어 한 공간에서 휴가를 보내게 됐다. 다만, 부녀 대통령은 저도에서 정서적 추억을 많이 쌓았으나 이 대통령은 그럴 여유가 없다. 대통령실은 휴가 기간 정국 구상을 가다듬고, 독서와 영화감상 등으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독서, 영화감상은 지금 상황에 비추면 한가로워 보인다. 휴가 끝나면 전쟁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저도의 추억'이 아니라 '저도의 구상'에 매달려야 한다.
휴가 떠나기 전날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폭락했다. 낙폭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최대치였다. "집 사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며 주식투자를 독려하고 '코스피 5000 시대'를 외친 이 대통령으로선 난감한 일이다. 가뜩이나 인사 파동 여파 등으로 국정 운영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시점이기도 하다. 여기다 조국 전 대표를 포함한 정치인 광복절 특사 포함 문제로 범여권이 들썩이며 모두 사면권자의 입만 쳐다본다. 3개의 특검이 경쟁적으로 전방위적인 수사에 나선 데 따른 역풍 역시 만만찮다.
취임 두 달 만의 내우(內憂) 외에 외환(外患)까지 겹쳤다. 미국과 관세 협상을 일단 타결했으나 여러 논란거리가 생기면서 후속 조치가 만만찮다. 더구나 휴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이번 협상에서 빠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상향, 한국의 국방비 대폭 증액 같은 민감한 현안이 논의된다. 양국 발표에서 결이 달랐던 농산물 개방 문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미국에 대한 추가 투자도 정리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도에서 추억에만 젖어 있지 않고 집권 초반의 국정 방향을 구상하는 데 더 치열하게 노력했다면 정치적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때보다 지금은 정국 상황이 훨씬 불안하다. 특히 한미협상의 마무리가 잘못되면 우리 기업과 국민에게 엄청난 손해를 입힌다. 작년 여름에 이재명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은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휴가 일정이 나오자 "대한민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휴가를 떠나겠다니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그때도 증시 폭락,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지명 등 인사 파동을 쑥대밭의 한 지점으로 명시했었다. 저도에서 역지사지도 해봐야 할 것 같다.
송국건 정치평론가 / 송국건 TV 대표, 전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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