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與 사령탑에 오른 정청래는, 선명성 앞세운 강경파

진영화 기자(cinema@mk.co.kr) 2025. 8. 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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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이재명 정부의 첫 여당 대표로 선출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 내 대표적인 개혁파로 꼽힌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인 그는 줄곧 '파이터' 이미지로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켜왔다.

2016년 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컷오프' 됐지만 이를 수용하고 '더컷유세단'을 만들어 전국을 돌며 유세에 집중하며 당내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21대와 22대 내리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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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
문재인·이재명 지도부서 최고위원
22대 국회 법사위원장 맡아 공격수 활약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2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전국당원대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2일 이재명 정부의 첫 여당 대표로 선출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 내 대표적인 개혁파로 꼽힌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인 그는 줄곧 ‘파이터’ 이미지로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켜왔다. 이번 경선에서도 향후 대야 관계에서 강력한 투쟁을 강조하며 정권 초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기를 원하는 당심을 공략했다.

정 대표는 1965년 충청남도 금산구 시골 마을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전 보문고를 졸업하고 건국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 1980년대 학생운동 중심 조직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산하 건국대 조국통일특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미 대사관저 점거 시위를 주도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년간 징역을 살았다.

이후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길잡이학원’을 운영하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활동을 통해 정치에 발을 들였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서울 마포을에 당선되며 여의도에 입성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셨고 2012년 총선에선 당선되면서 ‘퐁당퐁당’ 의원직을 수행했다. 2016년 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컷오프’ 됐지만 이를 수용하고 ‘더컷유세단’을 만들어 전국을 돌며 유세에 집중하며 당내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21대와 22대 내리 당선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이던 2015년 ‘문재인 지도부’에서 최고위원을 지낸 데 이어 2022년 ‘‘이재명 지도부’에서 다시 최고위원을 하며 ‘친이재명계’로 자리매김한다.

원내에서도 개혁 성향 정치인의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17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국회 본청 점거 농성을 주도했고, 19대 국회에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24일간 단식 농성을 했다.

특히 22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의 이력은 그에게 큰 정치적 자산이 됐다. 본회의 직전 법안 통과의 최종 문턱인 법사위원장을 맡아 야당 입장에서 최전방 공격수이자 수비수 역할을 수행했고 이를 통해 민주당 지지층에서 인기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 프로필> ▲ 1965년, 충남 금산 ▲건국대 산업공학과 ▲전대협 산하 건국대 조국통일특별위원장 ▲민주당 인터넷소통위원장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최고위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17·19·21·22대 국회의원(서울 마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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