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우리보다 10년이나 먼저 생겼는데!" 韓이 롤모델이었다는 日 J리그... "1993년부턴 한국이 배워갔어!"

임기환 기자 2025. 8. 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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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K리그가 일본 J리그보다 10년이나 앞서 출범했는데..."

최근 대한민국에서 막을 내린 2025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이하 동아시안컵)에서 일본이 3군을 내세우고도 동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하자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의 리그 비교에 대한 분석까지도 나오고 있다.

중국 '소후닷컴'은 일본 매체의 글을 인용해 한일 양국의 라이벌 관계가 비단 국가대표팀 경기에 국한되지 않고, 양국의 자국 리그 발전의 역사로부터 기인한다고 해석했다.

매체는 "K리그의 역사는 J리그보다 10년 앞선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최초의 K리그인 "슈퍼리그"는 단 5개 팀으로 구성되었으며, 그중 할렐루야와 유공만이 진정한 프로팀이었다. 나머지 세 팀(대우 로얄즈, 포항 아톰즈, 국민은행)은 아마추어팀으로 남았다. 이러한 상황은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미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확정했고, 전두환 정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야구와 축구의 프로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라며 K리그의 탄생의 정치적 맥락을 짚었다.

이어 매체는 "K리그 초창기에는 연고지 시스템이 부족했고, 팬들의 응원은 기업 시대의 응원단 스타일을 고수했다. 리그 형식이 초창기에는 불완전했지만, 한국 축구의 프로화는 일본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며 초창기 K리그의 형태가 뒤 이어 출범한 J리그의 창설에 영향을 미쳤다고 풀이했다.

매체에 따르면 일본 축구계의 프로화 논의가 촉발된 계기는 1985년에 열린 1986 FIFA(국제축구연맹)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예선으로 여겨진다. 매체는 "한일전 두 경기 결과는 일본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두 경기 모두 일본이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장에서 완전히 압도당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당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모리 다카시는 김정남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의 친분을 통해 양국 선수들의 경기 환경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깊이 인식하게 되었는데, 이는 일본 축구의 프로화를 추진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했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일본 축구 리그(JSL)는 여전히 실업팀이 주도하고 있었고, 인기도 저조했다. 일본은 K리그보다 5년가량 늦은 1988년에야 프로화 문제를 연구하고 유럽과 미국의 프로 스포츠 시스템을 연구하기 위해 리그 활성화 위원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3년 5월 J리그가 공식 출범하면서 일본 축구의 본격적 프로화 시대가 개막됐다. 매체는 "J리그는 K리그보다 준비 기간이 더 길었지만, 프로화 측면에서는 대한민국이 일본을 확실히 앞서 있었고, 국가대표팀 간 경쟁에서도 꾸준히 우위를 점했다"라고 언급했다.

1990년대 J리그의 출범으로 한일 양국의 리그는 경쟁 구도를 만들어 나갔는데, 각자의 독자적 생태계 속에서 다른 스타일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매체는 K리그에 대해선 "프로화 초기 클럽 운영은 전적으로 모회사에 의존했고, 경기장은 대부분 노후된 운동장과 기초 훈련 시설로 이루어져 있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축구의 강렬함과 신체적인 면모는 일본을 확실히 능가했다. 한국 축구는 투지와 정신을 중시했는데, 이는 팀들이 뛰어난 회복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다"라고 평가했다.

J리그에 대해서는 "일본 축구는 점차 기술 중심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켜 왔다. 가네다 요시토시와 기무라 가즈지 같은 선수들이 기술 중심적인 선수들을 대표했다. 일본은 힘과 속도는 한국에 밀렸지만, 기술적 정교함 면에서는 점차 우위를 점했다"라며 스타일의 차이를 설명했다.

J리그는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성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K리그에도 자극제가 됐다. 매체는 "1993년 J리그의 성공은 K리그 개혁의 불씨를 지폈다. K리그는 '홈팀 시스템'을 도입했고, 팬 문화는 점차 기업형 응원단을 대체했다. 명칭 또한 여러 차례 변경되다가 1998년 마침내 'K리그'로 정착했다. K리그의 프로화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연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양국 리그의 상호 보완적 관계와 경쟁 구도, 그리고 상호 교류가 결국에는 단순한 경쟁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매체는 풀이했다. 매체는 "프로 축구의 시작부터 리그의 혁신과 발전에 이르기까지, 양국은 상호 학습과 참고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이러한 상호 강화의 힘은 앞으로도 아시아 축구의 미래를 형성해 나갈 것이다"라며 긍정적 미래를 전망했다.

글=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사진=ⓒ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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