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PICK!] 효자상품·맘카페…우리말 속 성차별, 어디까지 바뀌었나
소년원·신사협정·팔방미인·자매결연
성 차별적 언어를 성중립적 언어로
“존중과 평화를 위한 사회적 출발점”

인기 상품은 왜 ‘효자상품’이고 육아 정보를 나누는 카페는 왜 ‘맘카페’일까. 일상 속 언어에 숨은 성별 고정관념을 벗겨내기 위한 ‘성중립 언어’ 개정 논의가 각계각층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언어를 성 중립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익숙한 표현일수록 성별 고정관념이 내포돼 있다는 인식 아래, 이를 대체하는 포용적 언어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펼쳐지는 것이다.
◆‘소년원’ ‘자매결연’ 등 특정 고정관념에 갇힌 단어들=2007년 국립국어원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발표한 ‘성차별적 언어표현 사례조사 및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성차별 표현은 다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크게 ▲남성을 대표로 호명하거나, 남녀 순서의 고정 패턴을 따르는 경우 ▲성별을 불필요하게 강조하는 경우 ▲특정 성별의 고정 관념적 속성을 부각하는 경우 ▲특정 성을 비하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샐러리맨’ ‘소년원’ ‘바지 사장’ ‘신사협정’ ‘효자상품’ 등은 남성을 중심으로 한 언어다. ‘얼굴마담’ ‘팔방미인’ ‘자매결연’ 등은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반영된 표현이다. ‘부모’ ‘학부모’ ‘신사·숙녀’ ‘아들딸’처럼 남성을 먼저 호명하는 예도 성차별적 언어로 분류됐다.
또 ‘여배우’ ‘여성 과학자’ ‘남자리듬체조선수’처럼 성별을 굳이 강조하거나 ‘여장부’ ‘꽃미남’ ‘원더우먼’처럼 기존 성 역할의 틀을 벗어난 인물을 특별하게 지칭하는 표현도 성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쓰이던 ‘양공주’ ‘된장녀’나 ‘쩍벌남’ ‘제비족’ 등은 성을 비하하는 대표적 표현이다.

◆익숙한 언어 대신 대안어 모색해야=그럼 성 중립적으로언어 표현을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소영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논문 ‘성차별 언어와 대안어의 성격’에서 성차별 언어를 ▲성별 표현을 제거해 중성화 ▲남성과 여성 모두 포함되도록 대칭화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제3의 표현으로 대체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에 따르면 예를 들어 ‘여의사’ ‘여배우’ 등은 직업 앞에 굳이 성별을 붙일 필요가 없으므로 ‘의사’ ‘배우’로 통일할 수 있다. ‘그녀’는 남성 중심의 3인칭 대명사 ‘그’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 자체로 통칭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실제로 많은 언론사에서는 기사를 쓸 때 ‘그녀’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자(子)’로 끝나는 법률용어(양자, 친생자 등)는 아들을 기준으로 만든 표현이라 ‘자녀’ ‘양자녀’ ‘친생자녀’로 바꿀 수 있다. ‘자궁’은 ‘아들 자(子)’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포궁(胞宮)’이라는 대체어가 제시된다. 포궁은 ‘세포를 품는 집’이란 뜻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돼 있다.
‘맘카페’ ‘맘스스테이션’ ‘마미캅’처럼 육아를 여성에게 한정 짓는 표현은 ‘육아카페’ ‘어린이승하차장’ ‘아이안전지킴이’로 바꿀 수 있다. ‘스포츠맨십’은 ‘스포츠정신’, ‘효자상품’은 ‘인기 상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 ‘자매결연’은 성별 고정관념을 줄이고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상호결연’으로, 결혼식 입장로를 뜻하는 ‘버진로드’는 ‘웨딩로드’로 순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 영어권에서는 버진로드 대신 ‘웨딩아일(wedding aisle)’이라는 표현을 쓴다.

◆‘모회사’ 대신 ‘지배회사’…법률 용어도 변화 추세=법률 영역에서도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2021년 ‘법률 속 차별 언어 개정을 위한 과제’ 보고서에서 성차별 표현 15개를 중립적으로 바꾸는 대안을 제안했다. ‘부모’는 ‘양친’, ‘부부’는 ‘배우자’, ‘형제자매’는 ‘동기’, ‘모회사’와 ‘자회사’는 각각 ‘지배회사’, ‘종속회사’로 순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이라는 용어 역시 남성 중심의 어감을 지닌 표현이라며 ‘젊고어린사람’ ‘젊은이’ ‘젊린이’ 등의 신조어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임신·출산으로 인해 경제활동을 중단한 여성을 뜻하는 ‘경력 단절 여성’은 ‘근로 중단 여성’이나 ‘새 일 찾는 여성’처럼 능동적인 의미를 담은 표현이 제안됐다. ‘부녀자’와 ‘부녀’는 성숙한 여성을 지칭하면서도 결혼 여부를 전제로 해 불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여성’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자고 했다. ‘유모차’는 ‘유아차’로, ‘미혼’은 ‘비혼’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다. 다만 ‘비혼’ 역시 결혼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인’, ‘일인 생활’ 등 보다 객관적인 용어 개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이미 오랜 기간 통용돼 온 언어의 일관성과 익숙함을 해친다는 이유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는 사회 인식과 함께 진화해 왔다. 일상의 언어부터 성평등을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은 의외로 단어 하나를 바꾸는 데서 시작될 수도 있다.
‘성평등 언어사전’을 펴낸 서울시 관계자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이 언어로 나타나기도 한다”며 “성평등 언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은 존중과 평등이 스며드는 사회적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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