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뉴스룸을 위하여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2025. 8. 2.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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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 다시 읽기)]

[미디어오늘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 취재, 기사 작성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한 달 간 대학 학보사의 기자들과 기사 작성 수업을 했다. 그들은 고민이 많았다. “기사가 게재되기 전에 인터뷰이가 보여 달래요.”, “기사 방향을 먼저 알려줘야 통계를 주겠다는데 어떻게 하죠?” 같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기자 초년병 때 나도 궁금했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한 것들이기도 하다. 수직적 위계가 두드러지는 편집국 내에서, 그런 걸 선배들에 물어보면 왜인지 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은 테마를 '저널리즘 윤리'로 잡았다. 한국의 기자들이 번역한 책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을 같이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의 절반 이상은 소속 기자들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로 가득차 있다. 심지어 취재원과 연인 관계를 맺을 경우 그 관계를 기준감독 에디터라 불리는, 윤리강령 준수 여부를 판단하는 에디터에게 알려야 한단다. 기자의 사생활까지 규율한다는 것이 놀랍지만, 생각해보면 취재원과 사적인 관계라는 것은 편파 보도에의 위험이 있을 수 있기에 이해가 된다. 취재원과 금전적으로 얽히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부문별로, 분야별로 다양했다. 뉴욕타임스의 기자들은 입사할 때, 자신이 맡게 될 업무와 관련한 금융자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음을 증명해야 한다. 또한 취재 대상이나 추후 취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회사, 기업, 산업에 대한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 전·현직 기자 20여 명이 취재 중 얻은 기업 정보로 주식을 사고, 기사를 쓴 후 팔아서 수익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상기했을 때, 뉴욕타임스의 이같은 규율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100페이지가 넘는 가이드라인을 보면서, 좀 부러웠다. 생각해보면 나는 기자 일의 대부분을 '해도 되는지' 여부를 고민하는 데 썼다. 고민의 마침표는, 내가 아니라 마감이 찍었다. 혼자 끙끙 앓다가 마감이 닥치면, 더 이상 고민할 여유도 없이 '지르는' 형태로 기사는 씌어졌다. '나몰라라' 하는 마음 반, '데스크가 적절히 걸러주겠지' 하는 마음 반이었다. 그러나 대개는 걸러지지 않은 채 송고가 됐고, 그 기사의 바이라인은 물론 '나'였다. 한꺼번에 여러 개의 기사를 보는 데스크는, 나보다 더 고민할 시간이 없었을 거다.

▲ 한국신문윤리위원회 홈페이지

그래서 함께 보도 윤리를 고민하는 풍토는 늘 내게 아쉬운 지점이었다. 물론, 내가 소극적인 탓도 컸다. 그러나 비슷한 고민들을, 다른 기자들도 더러 하고 있었다. 2020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이 폭로된 직후, 피해자를 두고 '피해 호소인'이라는 악의적 지칭이 시작됐을 때 많은 언론이 이에 동조했다. 나는 대부분 그것이 고의라기보다는, 긴박한 상황에서 비롯된 실수에 가깝다고 본다. 당시의 현장 기자들은 대부분 사회부 소속 저연차였고, 뉴스룸 내에서 적극적인 논의를 끌어내기 힘든 처지였다. 한국의 뉴스룸에는 뉴욕타임스처럼 '기준감독 에디터'가 없다. 젠더 데스크도 극히 일부 언론에만 있다.

물론 한국 언론사에도 윤리 강령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에는 윤리 강령뿐 아니라 자살, 성폭력 범죄, 재난보도 준칙 같은 상황별 가이드라인이 있다. 그러나 대개는 선언적이고 포괄적이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가 함께 발간한 '성희롱·성폭력·스토킹 등 사건 보도 참고수첩'은 내용도 많거니와 상황별 예시를 다루고 있어 실용적이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가 2020년에 만든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도 참고할 만하다.

문제는 이런 양질의 자료들이 현장에서 활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홍보도 덜 됐겠지만, 보도 윤리를 강화하려는 움직임 자체가 부재한 탓이다. '참고수첩'에서 사용 자제를 권고한 성폭력 사건 기사의 표현들은 요즘도 자주 기사의 제목과 본문에 등장한다. 가해 행위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표현 '몹쓸 짓'은, 아직도 수많은 성폭력 사건 기사의 제목이다. 아내를 대상으로 한 성적 촬영물을 불법 유포한 혐의를 받는 국민의힘 대전시당 당직자의 사건을 전하면서는, 범행 수법을 지나치게 자세히 헤드라인에 적은 기사도 많다.

▲ 취재. 사진=gettyimagesbank

더 나은 언론과 언론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더 많은 윤리강령이 필요하다. 기자협회나 언론노조가 만든 가이드라인에 대한 숙지도 좋다. 그러나 각 언론사마다 사정에 맞춰 구성원들이 직접 만든 윤리강령이 더욱 절실하다. 기자의 사생활과 소셜미디어 활용까지 규율하는 뉴욕타임스처럼, 분야별·부문별로 길고 자세할수록 좋다. 그렇게 오랜 논의의 결과로 만든 가이드라인을, 구성원들에 교육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보도 윤리에 관한 고민이, 현장 기자 한 사람의 몫으로만 돌아가는 것을 막는 일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데스크와 함께 숙의할 수 있는 토대를 고민해야 한다. 함께 머리를 맞대는 수 밖에 답이 없다고, 그날의 수업은 결론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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