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GO! 사표 쓰고 미국 종단] ⑹행복하려고 걷습니다

그런데 일부 장거리 하이커들은 이 지역에 들어서면 노르칼 블루스(Norcal Blues)라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설렘을 안고 출발한 사막구간을 지나 아름답고 다이나믹한 시에라를 마친 다음 만나는 무난한 노던 캘리포니아가 그동안 덮어두었던 몸과 마음의 피로를 직면하게 만든다고 한다. 우리 역시 지친 마음으로 ‘‘오늘은 쉬고싶다”며 휴식일을 하루이틀 연장하는 날이 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PCT 여정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끔씩 만나는 하이커 ‘휴고(Hugo)’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우리는 트럭키(Truckee)에서 기차를 타고 던스뮤어(Dunsmuir)로 넘어가려고. 번 에리어(Burn Area, 산불 피해 지역)는 패스할거야” 그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다음날 만난 ‘윤(Yoon)’이라는 60대 재미교포 하이커도 비슷한 조언을 건넸다. “저는 노던 캘리포니아가 너무 힘들었어요. 나무가 다 타서 그늘도 없고 재 때문에 걷기도 쉽지 않더라구요. 두 분은 남은 일정도 그렇고 차라리 바로 오레곤으로 넘어가면 어떨까요?” 오지랖이 넓은 건 아닐까 걱정하는 듯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남은 거리에 비해서 귀국 일자가 빠듯한 데다가, 사막에서 남편이 더위로 여러 번 기운을 잃었던 것을 생각하니 걱정도 앞섰다.

이 두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갑작스레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대로 스스로를 믿으며 걸어 나갈지, 조금이라도 여유를 만들기 위해 기차를 탈지 말이다. 이 선택은 무려 500㎞를 뛰어넘는 일이라 신중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 여행을 왔는지부터 돌아봤다. 누군가는 이 4300km의 길을 빠짐없이 걸으며 종주의 기쁨을 목표로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인생에서 경험하기 힘든 추억을 쌓는 것이 목표였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미국의 산 속에서 자연과 하나되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일정이 늦어져 여행 후반부에 하루 60~70㎞씩 걸으며 무리하는 일도 원치 않았고, 이 때문에 건강을 잃는 것도 두려웠다.

그래서 그저 행복하게 이 길을 걷고 돌아가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우리를 두고 “의지가 부족하다”거나 “종주에 실패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말해도 어쩔 수 없다. 타인의 평가가 우리의 행복을 좌우했다면 애초에 이 트레킹에 도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기차를 타고 던스뮤어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노던 캘리포니아의 절반 정도는 걷지않는 셈이다. 서둘러 기차표를 예매하고 나니 ‘이게 맞나’하는 아쉬움, 후회 같은 여러 감정이 올라왔지만 너무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막상 도시를 넘어가자니 이 역시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먼저 트럭키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을 달려 캘리포니아주의 주도 새크라멘토(Sacramento)로 가야한다. 이곳에서 밤 12시에 출발하는 야간기차를 타고 4시간 넘게 가면 새벽 5시쯤 아주 작은 마을 간이역이 있는 던스뮤어에 도착한다. 이 다음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히치하이킹을 해서 다시 트레일 입구로 돌아가면 된다.
그렇게 마주한 새로운 산은 설렘을 선사하며 우리의 우울과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했다. 자, 이제 또 씩씩하게 걸어보자. 캐나다 국경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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