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명목을 찾아서] (16) 엘리자베스 여왕과 하회마을 충효당 구상나무

26년 전 즉 1999년 4월21일 대한민국의 한 외진 마을 하회(河回)는 손님맞이로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알려졌을 뿐 아니라. 지금도 국제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영제국의 엘리자베스 2세(1926~2022) 여왕이 방문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것조차가 세계적인 뉴스감이지만, 삼천리 금수강산 중 그 많은 곳을 제쳐두고 유독 경상도, 안동 하회마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 고장 사람들로서는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여왕의 방문은 우리나라와 안동을 홍보할 좋은 기회였다. 따라서 마을을 둘러보는 일정과 더불어 "고추장과 김치 담그는 모습", "소가 논밭을 가는 풍경", "하회탈춤 공연", "고찰 봉정사 방문"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 여사가 준비한 여왕의 73회 생일상" 등 다양한 이벤트로 여왕을 맞았다.
그중 한 부문이 방문 기념식수였다. 장소는 서애(西厓) 고택 충효당 뜰이었다. 그러나 수종 선정에 상당한 고심을 했다고 한다. 1천여 종의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어떤 나무가 방문 목적과 어울리며 상징성이 높을까 하는 이유였다.
당시 실무를 보았던 안동시 산림과 최병원 주무관(전, 대구시 공원과장)에 의하면 소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구상나무 4종을 선발하여 각 나무의 특성을 정리한 보고서를 만들어 시장(정동호)께 올려 최종 낙점받은 나무가 4번째로 추천한 구상나무(Korea Fir)였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선비들이 좋아하는 매(梅), 난(蘭), 국(菊) 죽(竹) 등 사군자(四君子)와 은행나무, 주목 등 기념식수로 잘 활용하는 나무를 제외하고 선택된 것이다.
이 결정은 추천한 실무자는 물론 시장의 나무문화에 대한 높은 식견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소나무를 제외한 것도 퍽 흥미롭다. 많은 기관단체가 청사준공, 책임자의 이취임식 등의 기념식수에 소나무를 많이 심는다. 대체로 늘 푸르러 충절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일반화되었고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좋아하는 나무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반 국민의 정서와 달리 소나무의 영어 이름은 '재퍼니즈 레드 파인'(Japanese red Pine, 2015년 Korean red Pine 변경되었음)이다. 직역하면 "일본 적송"이다. 따라서 국민 정서와 달리 한국을 상징한다고 보기에 다소 문제가 있다. 반면에 구상나무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종이라는 면에서 가장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왕이 하회마을을 찾은 이미지와 잘 맞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의 모 농장에서 가져왔으며 고산식물을 평지에 심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배수가 잘되게 유공관을 묻고 자갈, 모래, 정원용 흙으로 정성을 다해 심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6개월 후에 죽었다. 이런 불상사(?)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출입문을 잠그고 크기와 수형이 같은 나무를 다시 심었으나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본디 살던 곳과 다른 환경을 극복하고 잘 자라고 있다. 여러 수종 중에서 구상나무(Abies koreana)를 심은 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출신 다겟(Taquet)과 포리(Faurie) 신부에 의해 1900년대 유럽에 전해져 크리스마스트리 시장을 석권하고 있으며 이후 미국의 아놀드 수목원의 윌슨(Wilson, 1876~1930) 박사가 1915년 제주도 한라산에서 채집하여 1920년 신종으로 학계에 발표함으로 존재가 알려졌다. 다만, 하회의 나무는 산지(産地)가 한라산인지 그 외 다른 산인지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이정웅 (사)대구생명의숲 이사장, 전 대구시 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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