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실로 이은 생명, 검은 실로 엮은 인생

도심 속 예술의 확장을 위해 지난달 25일 새롭게 문을 연 ‘가나아트 남산(용산구 소월로 322 그랜드 하얏트 서울 로비층)’과 ‘가나아트센터(종로구 평창30길 28)’에서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 ‘Return to Earth’가 열리고 있다(전시 기간은 7월 25일부터 9월 7일까지).
교토 세이카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독일 함부르크 조형대학, 브라운 슈바이크 예술대학,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유학한 작가는 현재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 중이다. 물감이나 붓 대신 ‘실’을 주요 도구로 사용하는 작가는 2020년 ‘Between Us’ 전에선 오래된 의자와 붉은 실을 엮어 개인의 존재와 관계를, 2022년 ‘In Memory’ 전에서는 흰 실과 배 그리고 드레스 같은 사물들을 통해 기억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나 다양한 방법으로 실을 다루는데 주제는 자연과 인간, 존재와 비존재를 연결하는 ‘순환의 구조’다. 시오타는 두 번의 암 투병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직접 경험했고, 그 시간들을 지나면서 인간의 삶은 자연에서 비롯됐으며 죽음은 소멸이 아닌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는 또 다른 차원의 순환임을 이야기한다.
이번 전시 대표작 중 하나인 ‘Cell’은 2017년 암이 재발하고 항암 치료를 받으며 죽음과 마주했던 작가의 경험이 오롯이 담긴 작품이다. 유리로 인간의 여러 장기를 만들고 검은 철사로 유리를 감싼 후 다시 그 위를 붉은 실로 감았다. 마치 모세혈관이 얽혀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유리와 철사는 단단하고 고정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열이나 압력에 따라 다시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유연한 재료”라고 했다. 이들 재료의 특성은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재생과 순환이 가능한 생명을 암시한다.
![가나아트센터에 설치된 시아토 치하루의 자연으로의 순환 개념을 시각화한 ‘Return to Earth’. [사진 가나아트센터]](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04/joongangsunday/20250804110206345sybb.jpg)
시오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쓴 작가노트에서 이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동시에 나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몸과 닮은 흔적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를 걸어가다 보이는 가지들은 신체의 혈관을 떠올리게 했고, 그것의 정교하게 얽힌 선들은 우리의 뇌 속 신경세포를 닮아 있었다. 내 몸은 자연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 일부임을 의식하기 시작했다.…우리는 종종 우리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그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흙(earth)에서 태어났고,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이것이 나의 흙으로의 귀환이다. 신체로의 귀환, 의식으로의 귀환, 그리고 내가 언제나 자연의 일부였다는 조용한 깨달음으로의 귀환이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공간을 압도하는 설치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지만 전시장 곳곳에서 캔버스 대신 천 위에 검정색 실과 붉은 실을 꿰매 놓은, 검정 연필과 붉은 연필이 마구 엉켜 있는 작은 드로잉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이들 작은 드로잉 작품이 모세혈관이 겉으로 드러난 듯 보이는 유리 장기나 심오한 철학의 대형 설치작품보다 보기 편할 수도 있겠다. 작가에게 ‘실’과 ‘선’은 감정과 기억,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 삶과 죽음 등을 가로지르며 서로를 연결하는 복잡한 매개다. 동시에 엉켜 있는 모습 그 자체로 인간의 복잡함을 이야기하는 상징이다. 때문에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인간과 인간 사이, 나의 내면과 외면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 그것으로만 읽어도 충분할 것 같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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