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 성지 아닙니다” 밤이 두려운 해수욕장
“해변도 공공장소입니다. 제발 지킬 건 지켜주세요!”
지난달 27일 오후 9시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해변에 나온 보령시 질서 단속반 공무원이 경광봉을 들고 이렇게 외쳤다. 20대 남녀들이 잔뜩 마시고 남은 소주병과 맥주 페트병 등을 그대로 두고 뜨려다가 적발됐다. 50m 떨어진 곳에선 젊은 남성이 술에 취해 얼굴이 달아오른 채 바다에 들어가려다 단속 요원 제지를 받았다. 귀를 찌를 듯한 클럽 음악 속에서 단속 요원들이 “해변 내 흡연은 안 된다”고 외쳤지만, 곳곳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모래성을 쌓고 조용히 수영을 즐기는 가족 단위 피서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밤이 되자 헌팅(즉석 만남)을 노린 유흥족들이 해변을 점령했다.
여름 피서철을 맞은 전국 휴양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과도한 유흥을 즐기는 일부 관광객들 때문에 관광객 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서핑 명소로 유명한 강원도 양양은 최근 몇 년 유흥객이 몰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객이 급감했다. 지난 7월 한 달간 강원도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은 340만8407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6.9% 증가했다. 강한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휴양객들이 증가한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양양은 24만4633명으로 논란이 일기 전인 2년 전(2023년)보다 32% 감소했다. 지자체들은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급하게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날 자정이 가까워지자 대천해수욕장은 돗자리를 펴고 술을 마시는 2030 남녀 무리로 가득 찼다. 시끄러운 음악이 곳곳에 울려 퍼졌고, 비키니 차림의 여성과 상의를 탈의한 채 돌아다니는 남성들이 시선을 교환하면서 오갔다. 어깨를 부딪혀 욕설을 쏟아내는 무리도 곳곳에 있었다. 가족 단위 피서객들은 해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기 오산시에서 온 이모(48)씨는 “가족끼리 편히 쉬려고 왔는데 완전 망쳤다”며 “숙소로 일찍 들어왔는데 고성과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10시 강원 강릉시의 경포해수욕장은 거대한 쓰레기장 같았다. 해변을 점령한 유흥족이 가져온 대형 스피커에서 귓전을 때리는 일렉트로닉 댄스뮤직(EDM)이 울렸다. ‘폭죽 금지’ 현수막이 30m 간격으로 걸려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취객들이 폭죽을 터뜨려 매캐한 연기가 자욱했다. 해변과 맞닿은 산책로에선 술에 취한 남녀 무리가 부둥켜안고 있었고, 바닥엔 유흥업소 광고지가 흩뿌려져 있었다. 9세 딸을 데리고 온 김예은(39)씨는 “길거리 광경이 민망해 딸과 함께 거닐기도 미안할 지경”이라고 했다.

이원선(26) 강릉시청 질서계도팀장은 “매년 여름철마다 만취한 일부 2030 관광객들 때문에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어떻게 좀 해보라는 관광객들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흥족들의 고성·폭행 사건 접수가 2~3배 증가한 것 같다”고 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아직까지 도내 다른 지역은 양양군처럼 유흥 상권이 발달하진 않았다”며 “평온한 관광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가족 친화적 휴양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강릉시는 경포해수욕장에 유아용 해수풀장과 생존 수영 교실 등을 만들었다. 속초시, 고성군도 미디어 아트쇼, 반려견 동반 해수욕장 등 가족 단위 관광객을 노린 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충남 보령시는 대천해수욕장에 유아용 시설이 마련된 ‘패밀리존’을 만들었다. 또 현장 관리를 위해 시 공무원과 질서 단속 요원 등을 하루 최대 400여 명까지 투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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