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보수정당과 보스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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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 밑 기생 체질화돼 자생력 상실
진짜 ‘야당’스러움은 언제 보일 건가
」
보스정당의 가장 큰 폐단은 민주주의 정당 체제와는 전혀 맞지 않는 구시대적 권위주의와 상명하복, 수직적·위계적·일방적 상하관계가 체질화돼 있다는 거다. 더 심각한 건 주요 구성원들도 보스의 그늘 아래서 그들만의 권력을 맘껏 향유하며 각자의 잇속만 챙기는 데 혈안이 돼있다는 거다. 필요한 건 단지 권력자에게 잘 보이는 것뿐. 그 속에서 민주적 절차나 쓴소리는 철저히 무시되거나 배제되기 일쑤다. 한마디로 옛 왕정국가에서나 볼 법한 철 지난 일진 문화가 21세기 대한민국 제1야당을 강고하게 짓누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보스로 떠받드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면 보스도 내치고 갈아치우는, 의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이비 보스주의자 행태도 서슴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되자 그새를 못 참고 손절하려 하지 않았나. 오죽하면 박 전 대통령이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던 이들이 모든 짐을 제게 지우는 걸 보면서 삶의 무상함을 느꼈다”고 토로했겠나. 그런데 이번엔 거꾸로 이전 보스와 단절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만 이어가면서 여론의 질타를 자초하는 형국이다.
공통점은 보스가 어느 순간 사라지니 우왕좌왕 좌충우돌,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맨다는 점이다. 기댈 곳이 없으면 홀로 서지 못하는 기생 정치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다. 10%대까지 지지율이 곤두박질쳤음에도 위기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야말로 민주정당으로서 최소한의 자생력조차 갖추지 못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징표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이는 무엇보다 보수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원래 보수주의는 현 상황과 기득권 유지에 주안점을 두는 이념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와 민생이 차별화 포인트였다. 보수주의 창시자인 에드먼드 버크가 “그냥 머물러 있는 건 절대 보수가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보수 제1의 책무”라고 강조한 게 대표적이다. 헌신·희생·책임감 등 보수주의자에게 요구되는 기초 소양도 실종된 상태다. ‘보수 책사’로 불리는 윤여준 전 장관이 “한국의 보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명예를 위해 몸을 던지지 않는다. 이게 오늘날 보수와 진보의 가장 큰 차이”라고 일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당스럽다’는 순우리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엔 ‘보기에 매몰하고 사막한 데가 있다’고 풀이돼 있다. 매몰하다는 ‘인정이나 싹싹한 맛이 없고 쌀쌀맞다’, 사막하다는 ‘아주 악하다’는 의미다. 뜻풀이마저 생경한 이 단어가 금기어로 통하는 건 한마디로 ‘정이 안 가는’ 대상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국가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려면 여당 못지않게 제대로 된 야당의 존재가 필수다.
1인 보스를 앞에 세우고 그 밑에서 여럿이 함께 기생하는 정당 구조로는 21세기 유권자들의 마음을 결코 얻을 수 없다. 더 비극적인 건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는, 아니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제1야당의 현주소다. 국민의힘이 3일 대표 후보 비전 발표를 시작으로 전당대회 레이스에 본격 돌입한다. 이번엔 과연 야당스럽기 그지없는 구태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정부·여당을 합리적으로 견제하며 차기 집권 능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진짜 ‘야당’스러운 보수정당의 모습은 대체 언제쯤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박신홍 정치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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