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탁현민을 내장한 이재명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문재인은 소통의 달인이었다." 이젠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많을 게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이재명은 탁현민을 내장(內藏)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미지 메이킹에서 매우 유리한 입지를 갖게 됐다.
이재명은 대통령실로 출퇴근할 때 교통 통제를 하지 않고 다른 차와 같이 신호를 기다렸고, 세월호·이태원·오송·제주 등 '4대 참사' 유가족에게 정부를 대표해 사죄했으며, 사망자 수를 가리키는 '656개의 우주'를 기억하겠다고 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사저널=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문재인은 소통의 달인이었다." 이젠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많을 게다. '이젠'이 중요하다. 8년 전엔 문재인은 분명히 '소통의 달인'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2017년 6~12월 28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유로 '소통을 잘한다'가 23번이나 1위에 올랐다. 이게 바로 당시 문재인 지지율 고공행진의 일등공신이었다.
소통보다는 불통에 더 가까웠던 대통령이 '소통의 달인'처럼 여겨진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세 글자다. 탁현민. 문재인의 이미지 메이킹을 전담했던 그는 당시 야당인 바른정당 대변인 박정하로 하여금 이런 논평을 하게 만들었다. "시중에서 탁현민 청와대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니는 것도 지나친 게 아니다." 물론 이건 청와대를 비판하기 위해 나온 말이었지만, 야당조차 탁현민의 탁월한 이미지 메이킹 능력만큼은 인정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에선 누가 탁현민의 역할을 했을까? 없었다. 아니 윤석열은 이미지 메이킹 자체가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워낙 다변에 다혈질 체질인 데다 속된 말로 전형적인 '무대뽀' 인간형이었기 때문이다. 남의 말은 목숨 걸고 듣지 않는 쇠고집인 데다 궤변엔 어찌나 능한지 "선수가 전광판 보고 운동하면 되겠나"라는 식으로 자신의 낮은 지지율을 정당화했다.
그런 윤석열과의 대비 효과 덕분에 이재명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지지율이 오른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이재명은 탁현민을 내장(內藏)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미지 메이킹에서 매우 유리한 입지를 갖게 됐다. 물론 차이는 있다. '대통령의 30일' 기자회견을 보자.

이재명은 연단 없이 기자들과 눈을 맞춰가며 말을 하고, 질문할 기자를 추첨 방식으로 정함으로써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그런데 이를 긍정적으로 보도한 진보 언론 기자들만 감동시킨 건 아닌가? 탁현민이 잘 지적했듯이, 기자를 추첨하니 좋은 질문 확률이 떨어지는 등 형식의 문제로 인해 맥빠진 기자회견이 되고 말았다.
이재명의 이미지 메이킹은 탁현민의 실력에 비해 어설프긴 하지만, 동물적 감각은 그 못지않다. 이재명의 원칙은 ABY(Anything But Yoon)다. 뭐든지 윤석열과 반대로 하면 된다. 이재명은 대통령실로 출퇴근할 때 교통 통제를 하지 않고 다른 차와 같이 신호를 기다렸고, 세월호·이태원·오송·제주 등 '4대 참사' 유가족에게 정부를 대표해 사죄했으며, 사망자 수를 가리키는 '656개의 우주'를 기억하겠다고 했다.
진보 언론은 신이 나서 이 모든 변화를 열심히 보도한다. 윤석열은 100년 만의 폭우에 '퇴근'했지만, 이재명은 집중호우에 대해 "과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며 둘의 차이를 비교한다. 사회적 약자가 피해자가 된 뉴스엔 어김없이 이재명이 그들의 수호신으로 등장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 감동극이 전개된다. 하지만 과욕은 금물이다. 이재명은 재난 사고 예방을 강조하면서 "최소한 이재명 정부에서는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질 수 없다"고 호언했다. 이는 오만이거나 자기도취다.
윤석열이 워낙 무능했던 데다 자해를 많이 저지른 탓에 ABY 뉴스의 수명은 한동안 지속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목표로 삼는다면 ABY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게 좋다. 윤석열도 한동안 ABM(Anything But Moon)으로 재미를 보긴 했지만, 오직 그 길로만 질주함으로써 자충수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던가. 이재명이 꼭 ABY를 해야 할 것은 윤석열의 오만이다. 반대로 가야 한다. 오만하면 죽는다. 대한민국 정치의 철칙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