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아늑한 슬픔, 작별인사

2025. 8. 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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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한 사람과 작별했다.

장례식장에서 잼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조카와 한동안 시간을 보낸 뒤 기차를 타고 그곳을 떠나기까지.

문득 나는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살던 모양과 그리 다르지 않게 빚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분은 한 번도 나와 언니의 상처를 아프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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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매 상처 감싸주던
사돈어른과 담담한 이별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살던 모양과 다르지 않아
그분의 애정 느끼며 울컥

얼마 전 나는 한 사람과 작별했다. 그분을 부르는 정식 호칭으로 '사돈어른'이 맞겠지만 나는 남몰래 '잼 할아버지'라 불렀다. 어느 만화영화 속 빵 굽는 할아버지와 닮아서였다. 동그랗고 반짝이는 뺨과 환하게 빛나는 두상, 평생 사과 과수원에서 일하느라 살빛이 검게 그을린 소박한 어르신이었다. 어느 고요한 오후, 나는 언니에게 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나는 현실에서 몸이 붕 떠올라 비현실의 세계로 떠밀려간 느낌이었다. 지병이 있으신 건 알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어르신이 그렇게 갑작스레 떠나실 줄은 몰랐다. 이튿날 아침, 나는 엄마와 KTX를 타고 조문을 갔다. 그 고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부석사가 있어 이십 대 시절엔 철새가 월동지를 찾듯 때마다 가곤 했다. 눈 내리는 날 혼자서, 단풍이 들 무렵 여럿이서, 여름비 내리던 날 언니와 부석사에 올라 안개 낀 산등성이를 봤다. 그러니 언니가 그 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나는 자연스레 '인연'이란 말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방문한 그곳은 여전히 편안했다. 장례식장에서 잼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조카와 한동안 시간을 보낸 뒤 기차를 타고 그곳을 떠나기까지. 내내 순조롭고 신비로울 정도로 아늑했다. 예기치 못한 이별이었지만 마주친 사람들의 인상과 정경이 들판에 핀 여름꽃처럼 소탈하고 자연스러웠다. 넘치지 않는 차분한 슬픔이 떠나간 이를 향한 애달픈 마음을 담담히 다독여주는 듯했다. 네 살배기 조카는 장례식장을 누비며 와다다 달음질쳤고, 아빠가 조문객과 맞절을 할 땐 말괄량이답게 뒤에서 물구나무를 섰다. 돗자리를 등으로 쓸며 "우리 다 같이 여기서 자자!"라고 말하면서 영정 속 할아버지께 재롱을 부렸다. 유치원 원복을 반듯하게 입고 향을 피워드리기도 했으니 아이의 그 천진함이 이별의 아픔을 덜어주었으리라.

내가 전해 들은 어르신의 마지막 모습도 참다운 애정을 느끼게 했다. 어르신은 장에 다녀오는 어머님을 마중 나가려다 차에서 정신을 잃으셨다. 사는 내내 가족과 이웃을 돌보시고 아낌없이 헌신했던 그 모습 그대로. 떠나실 때도 그분은 아내의 손짐이 무거울까 아픈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선 것이었다. 문득 나는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살던 모양과 그리 다르지 않게 빚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 끝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했다. 격한 감정 대신 내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담담한 애도였다.

그런데 얼마 뒤 나는 공원을 산책하다 불쑥 눈물이 터졌다. 녹음 사이에 서 있는 어느 고승의 동상을 보고 슬픔이 북받친 것이다. 동그랗고 반짝이는 그 민머리의 뒷모습이 마치 잼 할아버지 같았다. 그날 나는 하염없이 울며 걸었다. 그제야 내가 그분께 받은 마음이 어떤 것인지 그려졌다. 내가 어르신을 좋아했던 건 철마다 사과나 곶감을 보내주셨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분은 한 번도 나와 언니의 상처를 아프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무심한 배려와 존중이 언제나 맑은 물줄기처럼 내 마음에 흘렀기에 나는 어르신을 신뢰하고 좋아했다.

그 무렵 여러 날 같은 꿈을 꿨다. 어스름한 빛이 맴도는 풀숲에서 어리둥절한 눈으로 무언가를 찾는 꿈이었다. 뒤늦게 나는 그 장면이 언니에게 전해 들었던 발인하러 가는 날의 풍경이란 걸 알았다. 언니는 푸르른 소백산 자락을 돌아가던 그 길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네가 봤더라면 좋았을 거라 말했다. 나는 꿈에서나마 마음을 다해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을까. 허락된다면 지면을 빌려 못다 한 인사를 드리고 싶다. 잼 할아버지, 제 꿈에 오세요. 흙 묻은 트럭을 타고 처음 저를 만나러 오셨던 것처럼. 이제 편히 쉬세요. 고맙습니다. 또 뵈어요.

[김멜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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