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 불행에게, 어느 작은 동네 공원에서 [.txt]

한겨레 2025. 8. 1. 0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어느 봄날 동네 공원에서 갓 스무살이 된 여자와 중년 남자가 우연히 한 벤치에 앉게 된다.

공원에서 놀던 아이가 여자를 찾아와 "배고파"라고 한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대화를 트게 되고 각자 삶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두 사람에겐 여자가 돌보는 아이에게 주어진 단 세번의 대사 "배고파" "목말라" "피곤해"처럼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의 토로 외에 깊은 속내를 나눌 대화의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span style="color: rgb(0, 184, 177);">이주혜가 다시 만난 여성</span>
동네 공원 l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2025)

어느 봄날 동네 공원에서 갓 스무살이 된 여자와 중년 남자가 우연히 한 벤치에 앉게 된다. 공원에서 놀던 아이가 여자를 찾아와 “배고파”라고 한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대화를 트게 되고 각자 삶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여자는 주인집 아이를 돌보고 병든 과체중의 노인을 씻기고 보살피며 식사 시중까지 들어야 하는 고단한 가정부다. 이런 자신의 삶은 버젓한 ‘직업’이 못 되고 ‘일종의 처지’이므로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여자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함께 제대로 된 삶을 꾸려갈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한 댄스 클럽뿐이다. 변화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여자와 달리 남자는 상품 가방 하나를 들고 온갖 잡동사니를 팔러 다니는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서 앞날에 대한 계획도 사람에 대한 기대도 없이 일상의 조촐한 것에 만족하며 단조롭게 살아간다.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각자 생각하는 행복과 불행에 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동네 공원은 인간의 욕구에 관한 진지한 탐색장으로 변모한다.

내밀한 마음까지 털어놓는 두 사람의 대화는 어쩌면 다시 만날 일 없는 타인 사이라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에겐 여자가 돌보는 아이에게 주어진 단 세번의 대사 “배고파” “목말라” “피곤해”처럼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의 토로 외에 깊은 속내를 나눌 대화의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그날만 해도 저녁이 오면 여자에게 말을 걸어줄 사람은 더 이상 없고 여자는 침묵 속으로 돌아가 쭉 그렇게 지내다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러나 여자에겐 바라는 게 있고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꾸고 있으므로, 변화를 거부하며 일찌감치 희망의 싹을 도려낸 남자에게 행복의 가능성을 설파한다.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말한다는 사실, 그런 단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을 희망할 이유가 되므로 당분간 행복이라는 단어에 매달릴 거라고. 남자를 향한 여자의 간절한 호소는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는 안간힘으로도 들린다.

대부분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뒤라스가 쓴 최초의 희곡이기도 해서 실제로 1955년 출간 직후 연극으로 공연된 적도 있고 라디오 방송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프랑스 문학계의 새로운 목소리 누보로망이 태동하기 직전 선보인 이 소설 혹은 희곡은 뒤라스의 말을 빌리자면 욕구이론에 대한 진지한 탐구이며 공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침묵에 귀 기울인 결과물이다. 공연 팸플릿에 수록된 블랑쇼의 해설에 따르면 “동일한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전혀 다른 이유에서 그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소외되고 방치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침묵하던 불행이 체념한 불행을 만나 대화가 시작될 때 일방적인 듣기와 말하기는 소통으로 전개되고 비로소 희미한 희망의 틈이 열리기도 한다고 뒤라스는 역설한다. 욕망과 현실의 거리는 멀고 멀지만 두 불행이 잠시 스쳐 간 동네 공원에서는 그 거리가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간격만큼 가까워지기도 한다. 타인과의 대화가 한 사람의 행과 불행에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을까 하는 소설의 질문을 받아안을 때 우리는 광장보다는 좁지만 막다른 골목길보다는 트인 동네 공원의 힘을 믿고 싶어진다.

이주혜 소설가

이주혜 소설가·번역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