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하면 세계가 안다”… 외국인들 시위장 된 도심
주말엔 지방 거주자 올라와 합세
일각 “타국 갈등에 휘말릴 우려”

“태국은 죄 없는 캄보디아를 먼저 공격했다.” “침략을 당장 중단하라!”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은 500명이 넘는 캄보디아인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파란색·흰색·빨간색이 교차된 캄보디아 국기와 함께 ‘태국 군(軍)을 규탄한다’ ‘침략을 멈춰라’라고 적힌 팻말을 흔들며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팻말 문구가 캄보디아어가 아닌 한글이었다. 국경 분쟁으로 양국이 무력 충돌하는 상황을 한국 사회에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같은 날 오후 2시 종로에서 약 2km 떨어진 혜화역 3번 출구 앞에선 필리핀인 300여 명이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필리핀 국기와 전직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초상화를 들고 어눌한 한국말로 “두테르테를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마찬가지로 ‘청중’은 한국인이었다. 시위대 중 한 명은 기자에게 “엉망이 된 필리핀 상황을 한국인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도심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국제 시위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기구 등이 밀집한 서울이 빠르게 국제화하면서 외국인들이 자국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공론의 장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작년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약 265만명으로 한국 인구의 5.2%였다. 지난 10년간 1.5배 증가했는데, 일본(3%)과 비교해도 배 가까운 비율이다.
일본 도시개발 조사기관인 모리 기념재단이 매년 세계 도시 경쟁력을 평가하는 글로벌파워시티지수(GPCI)에서 서울은 작년 기준 세계 6위였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계가 주목하는 서울은 각국으로 정보가 퍼져나가는 주요 허브가 됐다”며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갖지 못했던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이 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는 미얀마 군부 규탄 시위가 열렸다. 미얀마인 600여 명은 서울역과 시청을 거쳐 종각까지 약 4.5km를 행진하면서 “군부는 물러가라, 주권은 국민에게” 등의 구호를 한국어로 외쳤다. 같은 시각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파룬궁 수련자 1200여 명이 노란 티셔츠를 입고 중국 공산당의 파룬궁 박해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중국인이었다. 중국인 황샤오민(55)씨는 “표현의 통제가 강한 중국에서는 이런 시위는 상상도 못한다. 한국에서라도 모국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했다.
일부 시민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미국에서 여행 온 존 올리버(37)는 “이미 서울은 파리나 런던 못지않은 국제도시”라고 했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외국인 시위는 주로 주말에 집중된다.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주말이 되면 서울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석방’ 시위에 참여한 필리핀인 그웬 가르시아(31)씨는 경기도 동두천의 한 공장에서 일한다. 가르시아씨는 “서울에서 우리 목소리를 내면 국제사회가 금방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충북 청주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인 홍 카우(33)씨도 이날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시위에 참여했다.
일각에선 다른 나라 간에 불거진 갈등에 한국이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6월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한국에 체류 중인 이란인들과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이 중동 분쟁과 미국 군사 행동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여 경찰이 대사관 주변 경계를 강화했다. 지난 2월엔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 지지자들이 ‘맞불 집회’를 열면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문화 공존과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논의와 정책·입법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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