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에어컨 없이 보낸 사흘
서울의 ‘최저’기온이 29도에 육박하던 날, 두문동재를 넘었다. 해발 1048m인 이 고개를 지나면 강원도 태백시의 시작이다. 평균 해발고도 약 902.2m.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고원 도시는 7·8월 평년(1991~2020년 평균) 최고기온 평균값이 25.9도와 26.0도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피서(避暑)였다. 태백시의 별명은 3무(無) 도시. 시원한 기후와 높은 고도 덕분에 열대야가 없고, 에어컨이 없고, 모기가 없다는 것이다. 7월부터 연일 폭염경보가 계속돼 전국 지도가 ‘노란색(폭염주의보)’과 ‘빨간색(폭염경보)’으로 칠해지던 날에도, 손가락 모양의 이 도시는 제주 한라산(제주 산지)과 함께 돋보이는 하얀색이었다. 태백에 잠깐 살았다는 시인 박준은 대구에서 만난 친구에게 이렇게 자랑한다. “태백도 어제는 정말 더웠어. 한낮 기온이 26도까지 올랐거든.” (산문집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두문동재 터널을 지나자, 놀랍게도 바람이 달라져 있었다. 기분 좋은 시원함이 손끝에 느껴졌다. 선풍기로는 흉내 낼 수 없는, 힘겹게 산을 올라 정상에 섰을 때 마주하는 청량한 바람.
이날부터 태백에 머무는 3일간 에어컨을 끄고 지냈다. 올해 6월 13일 서울에서 처음 에어컨을 켰으니 46일 만이었다.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서울의 폭염과 열대야 속에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얇은 카디건을 가지고 다니거나, 냉방병을 살짝 앓으면서 견뎠다.
에어컨 없이 나는 여름이 그렇게 좋을 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겪던 이유 모를 두통과 재채기가 먼저 사라졌다. 7월 들어 중단한 아침 달리기도 재개했다. 오전 6시 30분, 태백종합운동장에 도착하니 기온은 20도였다. 5km를 뛰려다 날씨가 너무 아까워서 10km를 뛰었다. 왜 이곳이 ‘원정 훈련의 성지’인지 끄덕끄덕.
그러나 서울의 폭염을 피해 온 외지인에게나 피서일 뿐, 태백 현지인들은 점점 더워지는 여름을 나고 있다. ‘3무’는 이미 깨졌다. 태백에도 조금씩 에어컨이 침투하고 있었다. 물론 아파트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건수는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이 적었다. 28가구가 사는 한 아파트 외벽의 실외기 개수를 세어 보니 4대였다. 식당에서 만난 60대 부부는 “10년쯤 전만 해도 선풍기 안 트는 집도 많았는데, 3~4년 전부터 에어컨 설치하는 집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했다.
7월 29일 오전 10시를 기해 태백에도 마침내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상황이 이틀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면 발령된다. 얼마 전 어느 기후학자는 라디오 프로에서 “올해가 이상기후가 일상화되는 원년이 아닐까 싶다”며 “이 정도 수준의 더위가 지속되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했다. 너무나 당연해서 모두가 경시하는 지구온난화가 이상기후의 원인이다. 태백으로 피서 갈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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