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1+1=1이 되는 세계에서 고통과 마주하는 법
끔찍한 증오의 악순환 끊으려
용서하고 진실 밝히려는 결심
그 숭고함과 선택에 경의 표해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어떤 진실이 삶에 극심한 고통을 안긴다면 그 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도 나름의 방법이 아닐까. 어떤 과거가 지속적으로 아픔을 안긴다면 그 과거를 도려내 묻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나 삶이 내게 알려준 건, 제때 정산하지 않고 외면한 진실은 언제이고 고개를 들어 들이닥친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그것이 한 개인의 삶을 넘어 공동체라는 거대한 문제와 결부될 때, 처절한 기억일지라도 꺼내서 마주해야만 다음 챕터로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해 보이곤 했다.

‘그을린 사랑’은 가상의 중동국가를 무대로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이곳이 극단적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간 복수와 복수, 그 복수가 낳은 또 다른 복수와 복수가 릴레이로 펼쳐진 레바논임을 눈치채게 된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나왈은 무슬림 청년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게 된다. 그러나 연인은 난민이라는 이유로 총살당하고, 아비 없이 태어난 아이는 발에 표식이 새겨진 채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이후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다니던 나왈은, 기독교 민병대가 이슬람교도들에게 가한 참혹한 학살을 목도한다. 그것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지옥. 이 사건을 계기로 나왈의 세계는 흔들린다. 나왈은 팔레스타인 무슬림 저항조직에 가담하고,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를 암살한 죄로 감옥에 15년간 감금된다. 감옥에 갇힌 시간 동안 나왈은 고문기술자 아부 타렉에게 끊임없는 성폭행을 당한다. 그곳에서 아부 타렉은 나왈을 이렇게 불렀다. ‘72번 창녀.’ 비극적이게도 나왈은 자신을 창녀로 부르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다. 더 비극적이게도, 나왈은 훗날 그 남자에게서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메던 표식을 발견한다. 오래전 이별한 아들에게 남겼던 표식을.
영화에서 나왈의 딸 잔느는 수학자로 설정돼 있다. 수학의 세계에서 1+1=2가 진리다. 그러나 잔느와 시몬이 아버지와 오빠/형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건, 1(아버지)+1(형제)=1, 이라는 논증의 세계를 벗어난 결과물이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이 복잡한 세상은 수학공식처럼 정확하게 흘러가지 않음을. 전쟁이 빚어낸 비극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토록 참담한 비극 앞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진실 대신 침묵을 선택했던 나왈은 삶의 마감을 앞두고 침묵을 깨기로 한다. 쌍둥이 자녀에게 남긴 유언과 수신자를 지정한 두 통의 편지가 그 증거다. 아들이자, 내 자식들의 아비인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왈은 증오를 담아내지 않는다. 대신 불가능해 보였던 용서와 무조건적인 사랑을 전한다. 그것은 끔찍한 복수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그녀 나름의 결정.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을 용서하고, 기록하지 못할 것 같은 진실을 기어코 건져올린 한 여성의 선택을 통해 ‘그을린 사랑’은 인간의 숭고함을 전한다. 그 선택이 너무나 거대해서 나는 또 얼어붙었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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