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은 혐오·배제 아닌 조화·포용에서 자랐다 [안병욱 칼럼]


안병욱 |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뉴욕타임스는 21세기 최고의 영화로 선정했다. 우리 소극장에서 시작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해당 분야 최고 권위인 ‘토니상’에서 작품상, 극본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징어 게임’ 등 한국 문화의 세계적 선풍을 전하는 소식은 끝이 없다.
19세기 말, 서양인들은 한국을 처음 접하며 아시아 동쪽 끝에 자리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 혹은 ‘은자의 나라’로 묘사했다. 그런 시선으로는 지금의 한류 유행을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도 한국은 식민지 지배, 민족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참극을 겪었다. 더욱이 군사 쿠데타와 권위주의 통치가 반복되면서,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문명국이라기보다는 변방의 후진 사회로 인식됐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경제성장, 우수한 품질의 한국산 상품, 공연예술 분야 등에서 뛰어난 성과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70년 동안 이어진 민중의 저항과 투쟁을 통해 성취한 민주주의 발전은 인류 문명의 새로운 이정표가 돼가고 있다. 곧 한국 문화와 한국인들의 창의적 활동은 국제사회에서 한류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해 세상 사람들을 매료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변모와 국제 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나라 밖은 물론 안에서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이 물음에 만족스럽고 충실하게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부분적으로는 한반도에 정착한 이래 포용과 조화로 지속해온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다. 고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꾸준히 선진 문화를 수용하여 사회 진보를 이룩해온 역사가 한국 사회의 저력과 문화 잠재력의 역사적 토대인 것이다.
선사시대 이래 농경 사회의 안정된 정착 생활을 통해 주민들 간에 긴밀한 공동체적 결속과 폭넓은 정치적 유대가 형성됐다. 이를 기반으로 건국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내부의 여러 부족사회 습속을 배타적이지 않게 융합함으로써 고대국가로 발전했다. 당시 한반도에 전래한 불교는 인도의 문물뿐 아니라 중국 등 세계 선진 문화들을 융합해 전파했다. 삼국은 그런 불교를 수용해 사회 발전을 이루고 서로 교류하고 대립하는 가운데 각자 개성 있는 문화를 형성했다.
7세기 중엽 신라는 당나라와 동맹을 이뤄 더 선진적이었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 대부분을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과 다른 한반도 고유의 정체성은, 패배한 고구려와 백제의 축적된 역량들을 경주에 펼쳐진 불국토 이념 아래 융합시킬 수 있었고, 이로써 더욱 수준 높은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이어진 고려왕조 또한 불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다. 불교는 한국에 뿌리내려 천년여 동안 한국인의 의식과 이념으로 작용해, 사상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불교는 한국인의 의식 세계에 깊은 영향을 끼쳐왔으며, 오늘날까지도 포용적이고 초월적인 감성을 한국인의 심성 속에 풍요롭게 채워주고 있다.
그러나 고려가 고대국가에서 중세 사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정치적으로 불교의 고대적 세계관을 넘어서야 했다. 고려 지식인들은 이런 역사적 과제를 선진 중국 문물과 유학을 수용하고 폭넓은 대외 교류와 활발한 소통을 통해 풀어나갔다. 이 시기의 고려는 외국의 선진 문물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서의 위상을 위협받지 않을 만큼 확고한 정체성과 자주성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고려왕조는 14세기 말에 조선왕조로 바뀌었다. 조선은 중국 성리학의 이념 체계를 수용하여 통치했다. 조선 유학자들은 학식을 숭고한 가치로 여겼고, 인간과 사물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탐구에 열중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유학은 최고 수준의 학문적 성과를 냈으며 고도의 인식 체계를 기반으로 뛰어난 중세 문예 문화를 이룩했다. 곧 한국은 불교문화를 수용하여 각 개인의 포용적이고 초월적인 감성을 풍부하게 하였고, 그 바탕 위에 다시 사회적으로 논리적인 사유 체계이면서 지적이고 비판적 인식을 키우는 유교 문화를 꽃피웠다. 불교와 유교 모두 한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사상과 철학 체계로 발전했다.
이들 문화 요소들이 오랫동안 축적되고 내적으로 숙성되면서 고유의 전통으로 자리잡았고, 다시 조화롭게 융합되어 높은 수준의 인식 체계로 내면화됐다. 곧 한국 문화와 한국인 각각의 내면에는 불교적인 심성, 유교적인 지혜, 부족사회 샤먼이 지닌 자연 교감력 같은 정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샤머니즘, 불교, 유교의 각기 다른 문화 패러다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융합돼 한국의 전통을 형성했으며, 이는 다시 새로운 문화를 수용할 토대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주목할 점은, 한국은 불교 국가도 아니고 유교 국가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은 인류 문명의 전파 과정에서 지정학적으로 격차가 지는 후진 지역이었다. 이 같은 한계를 인식하고 선진 문물 수용에 게으르지 않았으며 개방적으로 외래문화를 포용하였고 조화롭게 융합했다. 그러나 한국은 특정 사상에 매몰돼 훗날의 변화 여지를 빼앗기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 곧 한국은 고대사회 이래로 부족한 문화를 수용하여 궁극의 수준에 이르도록 지혜를 탐구하지만, 거기에 함몰되지는 않았고, 조화롭게 융합을 이루면서 정체성을 견지했다. 이러한 문화 전통이 한국인의 예술성과 창의적 역량을 배양했다. 이러한 문화적 정체성은 오늘날 국경과 장벽이 사라진 글로벌 문화 교류의 흐름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한류라는 세계적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종족과 종교로 인한 갈등과 분열이 없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광신적 종교인들이 교회의 존립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세속 극우 정치인들과 추악한 야합을 꾀하고 있다. 이들은 신도들을 극우 선동의 들러리로 내세우고, 혐오와 차별 의식을 조장해 사회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포용과 조화의 공동체 유대를 무너뜨리는 역사 퇴행이다. 그들 스스로 자존감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국기를 흔들어대는 행태는 지난날 식민지 예속을 자청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망발이다. 과연 그들은 어떤 미래를 기다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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