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칼럼] 잿빛 풍경 속에서- 배소희(수필가·시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사진 한 장에 마음이 한참 동안 머물다 창밖 풍경을 보았다.
정신적 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그 안에는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담겨 있다.
햇살이 유난히 잔인한 날이면 그런 장면들이 자주 떠올려지고 우울한 잿빛 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그들을 잊지 않는 마음, 그들의 자리를 기억하는 눈빛이야말로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 한 장에 마음이 한참 동안 머물다 창밖 풍경을 보았다. 쨍한 햇빛에 건너편 콘크리트 건물의 그림자가 유난히 짙었다. 남자는 진흙탕 위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목덜미에 흐르는 땀으로 온몸이 흥건하게 젖은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여느 해보다 많은 비가 쏟아졌던 수해 지역에서 복구를 위해 구슬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내 마음이 무거웠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망연자실한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자원봉사자, 군인, 공무원 등 많은 사람이 폭염 속에서 흙탕물에 젖은 삶의 잔해들을 치우고 있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지키고 삶의 터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노동의 현장이었다. 땀에 젖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현장으로 가서 그들을 도울 용기를 내지 못하는 자신이 미안한 요즘이다.
그 모든 것이 말보다 선명했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구도 기다리지 않아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폭염 속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늘 하나 없는 그 자리에서 가장 깊은 그늘을 대신 지고 있는 사람들. 삶이 무너진 자리에는 뜨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공간에서의 침묵과 잔해를 치우면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자신의 집도 피해를 입었지만 자신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이웃에게 찾아가 삶의 잔해를 조용히 끌어안는 따스한 사람이 기억에 남았다.
오늘도 폭염 경보로 뜨거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휴가가 시작된 사람들은 그늘을 찾아다니고 에어컨 바람이 있는 실내로 들어가 더위를 피할 것이다. 하지만 이 도시 어딘가에서는 폭염과 한 몸이 되어 곳곳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신적 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그 안에는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일하는 모든 사람의 땀에는 수고로움도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들의 땀의 가치를 자주 잊고 사는 것 같다.
청소 노동자, 택배기사, 건설 노동자, 새벽 시장의 사람들 등 그들의 하루는 늘 우리가 잠들기 전이나 눈 뜨기 전부터 시작된다. 도시가 쉬고 있을 때도 그들의 발길과 손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사람들이 그늘을 찾아다니고 한가롭게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폭염과 한 몸이 되어 땀을 흘리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햇살이 유난히 잔인한 날이면 그런 장면들이 자주 떠올려지고 우울한 잿빛 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그럴 때면 미안함으로 고개마저 숙여진다. 잠깐의 휴식 시간으로 그늘에서 쪽잠 자는 노동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한 적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삶을 짓는 손들이었다. 우리가 편히 머무는 집도,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놀이터도 모두 그들의 노동이 빚어낸 공간이다. 우리의 삶이란 누군가의 손으로 세워지며 그 노동이 얼마나 고되고 무거운 것인지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우리가 기대어 살아가는 모든 풍경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었다. 그늘 속에 앉은 나와 그늘 없이 일하는 그들과의 간극으로 내 마음이 자꾸만 시려 온다.
그들을 잊지 않는 마음, 그들의 자리를 기억하는 눈빛이야말로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다. 함께 일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만큼은 그들 곁에 서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배소희(수필가·시인)
Copyright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