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詩티즌 리포트-마음의 단상] 그리운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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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근무한 학교는 교정이 넓었다.
원래 대전사범학교로 시작한 학교여서 교정의 역사가 깊었고 그만큼 잘 가꾸어져 있었다.
도시화로 인해 최근 신설된 학교들은 교정이라고 할 것이 없다.
현재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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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근무한 학교는 교정이 넓었다. 원래 대전사범학교로 시작한 학교여서 교정의 역사가 깊었고 그만큼 잘 가꾸어져 있었다. 워낙 오래된 학교여서 건물은 많이 낡아 있었다. 그러나 교정의 아름다움이 그러한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만큼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운동장이 한없이 넓었다. 그리고 그곳엔 천연 잔디가 깔려 있었다. 군데군데 물이 고이는 곳은 잔디가 죽어 있기도 했지만 그런 곳에는 대신 토끼풀이 자라고 있었다. 봄에는 토끼풀꽃이 피어있어서 여학생들이 가끔 꽃을 따 와서 팔찌처럼 차기도 하였다. 구석진 곳엔 자운영꽃도 피어있었고 노란 민들레도 피어있었다. 필자는 그곳에서 흰 민들레를 처음 보았다. 나중에 그것이 약효가 뛰어난 토종 민들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본동과 후동을 잇는 통로 사이에도 잔디가 깔려 있었다. 그곳에는 지렁이가 많았다. 여름날, 땅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자신이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던 지렁이는 블록을 통과하지 못하고 말라 죽기도 했다. 대부분 여학생은 소리를 지르며 징그러워했지만, 그중 머슴애 같은 여학생들은 나뭇가지에 지렁이를 걸쳐 놀기도 하였다.
학교 건물이 있는 동쪽에는 언덕이 있었고 그 위에 강당이 서 있었다. 웬만한 체육관 크기였다. 그 언덕에는 아카시아가 봄마다 꽃을 가득 피웠다. 향기가 학교를 뒤덮었다. 아카시아 길이 끝나면 아름드리 목백일홍 나무가 있었다. 그곳을 학생들이 꼬꼬마 동산이라고 불렀다. 나무 밑을 걷다 보면 매끈한 목백일홍 아래에는 스스로 허물을 벗은 껍질이 가득 쌓여 있었다. 강당 아래에는 가정 실습을 하는 가정관이 있었는데 건물 전체를 담쟁이덩굴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가을에는 담쟁이덩굴도 단풍이 들었다. 세상은 온통 붉은빛이었다. 아니 모과나무도 언덕을 채웠으니 노란빛도 함께였다. 참외밭에 참외가 뒹구는 것처럼 모과나무 아래는 온통 노란 빛이었다.
필자는 거기서 아이들과 교정의 풍경에 관해 이야기했다. 국어 교사로서 어떤 날은 문학을 이야기하고 어떤 시간에는 필자가 쓴 졸시도 읽어줬다. 학생들은 그 당시 미등단자였던 필자의 독자들이기도 했다. 그 후 교정을 거닐며 썼던 시들로 등단을 하였다. 그 학교가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던 일이었을 수 있다. 그때 썼던 시의 소재가 말 그대로 민들레, 지렁이, 산비둘기, 아카시아, 담쟁이덩굴, 모과나무 등이었다.
도시화로 인해 최근 신설된 학교들은 교정이라고 할 것이 없다. 도심의 부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결과이다. 현재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교정을 확보하여야 한다. 가꾸는 것은 구성원들의 몫이며 결과물이 될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온갖 동식물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살려야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천리(天理)를 학생들이 직접 느꼈으면 한다.
배세복 시인은
- 충남 홍성에서 출생해 대전에서 국어교사를 하고 있다. 201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두고 온 아이> 등의 시집 출간과 함께 제1회 <선경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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