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역강국’ 한국이지만 AI 없인 미래 없다

한국은 세계 6위의 무역강국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이 G20 국가 중 3위에 달하는 수출 중심형 경제다. 정부가 인공지능(AI)에 100조원을 투자하고 국가AI위원회를 확대·강화할 계획을 밝혔지만, 무역 현장의 주역인 11만 무역물류업체의 AI 활용 수준은 크게 미흡하다.
최근 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무역업체의 78%가 AI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실제 무역업무에서 AI를 활용해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업은 16.9%에 불과했다. 무역물류업무의 전문성으로 인해 챗GPT, 클로드, 제미나이와 같은 범용 LLM(거대언어모형)은 실무에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LLM은 무역물류 업무를 처리하는 데 기술적 한계가 명확하다. 대외무역법, 관세법 등 무역 법규와 국가별 통상 법규에 대한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고, 한국 고유의 국가전자무역플랫폼(uTradeHub), 전자통관시스템(UNIPASS), FTA코리아에서 제공하는 특수성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해외 LLM으로는 한국 기업의 무역실무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범용 LLM의 이런 제약을 극복할 글로벌 AI 무역물류 솔루션들도 마땅치 않다. 알리바바의 이커머스 플랫폼이나 글로벌 SCM(공급망 관리) 솔루션은 대부분 B2C(기업-소비자간 거래) 전자상거래나 단순 물류에 특화되어 있다. 특히 주요 교역국의 복잡한 무역 규제와 제조업 중심의 B2B(기업간 거래) 무역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다행히 무역물류 AI 과제를 해결할 한국만의 성공 DNA가 있다. 국가전자무역플랫폼은 매년 6조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며 한국을 UN과 APEC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디지털 무역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전자무역촉진에관한법률 제정과 정부 부처 간 긴밀한 협력, 유트레이드허브 구축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 이러한 무역 선진화 경험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산업계의 협력, 그리고 법적 기반 마련이 무역물류 AI 엔진 개발에도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다만 과거와 달리 AI 시대에는 민간이 혁신을 주도하고, 정부는 무역물류 AI 투자를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무역플랫폼에서 생성되는 풍부한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형 무역물류 AI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추진체계 구성과 데이터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추진 체계는 한국무역협회와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이 추진 중인 ‘무역물류 AI 전략 포럼’을 국가AI위원회의 핵심 의제로 격상하거나, 무역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AI를 총괄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범부처 TF를 구성하는 방안이 있다. 전자무역촉진에관한법률을 개정하여 무역물류 AI 서비스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현재 5년 후 삭제되는 무역 데이터를 AI 학습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 보존 및 활용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
다만 정부는 법적 기반 조성에 집중하고, 실제 개발은 무역물류업계와 국가전자무역기반사업자가 주도해야 한다. 민감한 영업비밀이 포함된 무역 데이터의 보안 확보와 LLM ‘환각’(Hallucination) 현상 검증 체계 구축은 개발 과정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AI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무역물류라는 전문 영역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 무역물류 AI 엔진은 단순히 기술 확보를 넘어, 한국 무역의 지속적인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필수 인프라다.
신보호무역주의와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는 지금, AI를 활용한 무역경쟁력 강화는 국가 경제의 핵심 과제다. 국가전자무역플랫폼 구축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다시 한번 힘을 합쳐야 할 때다. 무역물류 전문가들과 AI 기술자들이 지혜를 모아 한국형 무역물류 AI 엔진을 개발한다면, 세계무역질서 재편을 주도하는 국가로 거듭나는 기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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