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순의 충청女지도] 눈물로 써내려간 서간 … 항일 망명 가족의 애끓는 情

2025. 7. 3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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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 여의고 작은아버지 각별하게 여긴 마음 녹여내
찬탈당한 국권·백성들의 저항적인 삶의 모습 등 방증
어순이의 한글편지
어순이(조카)가 서간도에 망명중인 어윤적(작은아버지)에게 보낸 편지.(1918년 1월 6일)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작은아버님께 답장편지 아룁니다. 하늘과 신령이 도우시어 천만 뜻밖에 임자년(1912) 가을 7월에 속리산의 산천에서 춘몽같이 뵈옵고, 여러 해 그리워하던 회포도 위로하지 못하였습니다. 진지 한 때도 제대로 갖추어 대접도 못 했는데 문득 되돌아가시니, 밝고 맑은 해와 달은 흰 구름이 가린 듯하여 마음이 울울하였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미칠 듯한 마음을 어찌 다 형용하오리까? … (중략) … 세상에 허망한 일이 사람의 일입니다. 우리 형제 숙질이 힘겨운 세상을 만나, 남북에 각기 흩어져 백리 천리에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서로 막힐 줄을 어찌 알았으리요? … (중략) … 어느 세월에 다시 형제 숙질을 다시 뵐는지? … (중략) … 천륜의 지극한 정을 조금 생각하다가 이러한 시대를 당하오니, 철석(鐵石)인들 어찌 온전하리까? 마음은 항상 순하게 부는 바람 같사오나, 몸은 어찌 무겁던지 육칠 년을 진퇴 중에 젖었으니 가련한 것이 사람입니다. 바람은 손발이 없어도 천하 각국을 돌아보는데, 하물며 사람으로 세상에 천하와 천리를 왕래 못 하오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오리까? … (중략) … 작은아버지 형제분 다시 한번 앉아서 첩첩한 심회를 위로하는 소원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요, 여러 가지 심화(心火)를 잊어버리시고 귀중 제절을 안심하시옵소서. … (하략) … "(1918년 1월 6일)

충북 보은군 마로면에 세워진 애국지사 어윤석·어경선 부자 추모비. 어윤석은 어순이의 당숙, 어경선은 여순이의 육촌이다.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이 편지는 어순이(魚順伊, 1874-1946)가 중국 서간도로 망명간 작은아버지 극재 어윤적(魚允績, 1847-1933)에게 답장한 내용의 일부이다. 어순이는 이 편지를 통하여 고국을 떠나 '항일수의(抗日守義)' 모진 고생을 견뎌내고 있는 작은아버지에 대한 애끊는 정을 표현해 내고 있다.

이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임자년 7월에 속리산에서 봄 꿈처럼 덧없이 만났다 헤어져 여러 해 그리워했던 회포를 풀지 못했다. 둘째, 진지도 제대로 차려드리지 못했는데 문득 (중국으로) 되돌아가셨으니,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우울하여 미칠 듯하다. 셋째, 이렇게 힘든 세상을 만나 가족들이 남북에 각기 흩어져 얼굴도 못 보니, 서로 막힐 줄 어찌 알았겠는가? 넷째, 천륜의 지극한 정을 생각하면 쇠와 돌도 다 녹아내릴 것 같다. 다섯째, 마음 같지 않게 몸이 무거워 육칠년 동안 건강이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면서 지냈다. 여섯째, 바람은 손발이 없어도 천하 각국을 돌아다니는데, 사람은 천리를 왕래 못하니 슬프다. 일곱째, 작은아버지 형제분을 다시 만나 첩첩이 쌓인 심회를 풀고 싶다. 여덟째, 마음속의 화를 잊어버리고 마음 편안히 지내시라는 것이다.

'만리초정'의 표지.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아, 어찌하리오!' 통곡하며 '거국수의(去國守義)' 서간도 망명 택한 함종어씨 어윤적 일가= 1910년(경술) 2월 16일 아침 충청도 용포 부강역. 극재 어윤적은 네 명의 아들과 며느리, 손자 등 10여 명의 가족과 두 명(김화진, 민정식)의 동지 가족 남녀노소 권속 수십여 명과 함께 기차에 몸을 싣고 중국 서간도를 향해 망명길에 올랐다.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식민지에 준하는 통치와 수탈이 자행되자, 나라를 떠나 장기적인 독립운동에 동참하고자 결의한 것이다.

자명종은 8시 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때에 강바람은 쓸쓸히 불어오고 음산한 비는 무겁게 내렸다. 고국산천을 떠나는 이들의 마음은 더욱 처연하였다. 전송하러 나온 이들과 떠나는 이들은 서로 손을 부여잡고 기약 없는 이별에 한없이 흐느꼈다.

옷깃에 흘린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 기차는 조치원역에 다다랐다. 일행을 실은 기차가 통과한 역은 용포 부강역(출발역)-조치원-천안-남대문(16일, 숙)-용산-임진강-평양-신안주(17일, 숙)-정주-박산-백마-신의주(종착역, 18일, 숙)이다.

기차는 3일간 각 지역을 경유하며 종착역인 신의주에 닿았다. 부강에서 신의주까지 1300여 리의 장도였다. 첫째 날은 남대문 역에서 하차하여 김참봉 집에서, 둘째 날은 신안주 권명협 집에서, 셋째 날은 신의주 임재경 집에서 각각 숙박을 하였다.

2월 23일 오후, 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넜다. 압록강 중류에 배가 도달할 즈음 강풍이 크게 불고 파도가 세차게 일어 부인네들과 어린아이들은 거의 넋이 나갔고, 얼굴빛을 잃을 정도로 위태로움을 겪기도 하였다. 일행은 드디어 중국 땅 안동현에 도착하여 '쌍아지(賽馬集)' 조선인이 경영하는 객주에서 다리를 쉴 수 있었다.

2월 28일, 어윤적 가족은 봉천부 본계현 감창에 도착하였다. 고국을 떠난 지 열흘 남짓 되었으나,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한 타국에서 더 이상 고국의 의관, 산천, 풍토, 사람을 볼 수 없었다. 현실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엄혹했다. '아, 오호 통재라! 어찌하리오!'를 외치며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나날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만리초정' 첫 페이지.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부인어씨행록(夫人魚氏行錄)'에 기록된 어순이의 삶=어순이는 아버지 어윤작(1845-1881)과 어머니 칠원윤씨(1846-1905)의 첫째 딸로 경기도 광주 고덕리에서 태어났다. 은진송씨 세한재 송시도의 후손인 강와 송은헌(宋殷憲, 1876-1919)과 혼인하여 충북 보은군 마로면 갈평리에서 살았는데, 1남 2녀의 자녀를 낳았다.

어순이와 송은헌의 결혼은 송은헌이 어윤적의 문하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맺어졌다. 송은헌은 1896년 충북 제천에서 거의한 류인석 의병에 군자금을 제공하였고, 1919년 스승의 제문을 지으면서 항일 문구를 넣은 것으로 인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석방되어 바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어 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되었다.

어순이의 삶의 모습은 남편의 문집 '강와집'에 '부인어씨행록'이 부록으로 실려 있어 알 수 있다. '부인어씨행록'에 의하면, 어순이는 평소에 소설과 잡서 등은 멀리하고, 우암 송시열의 '계녀서' 읽기를 가장 좋아하였다고 한다. 인현왕후의 사실이 실려 있는 한글본 실록을 손으로 베껴 쓰고 읽으며, 인현왕후의 성덕을 깊이 추앙하였다.

어순이는 친정아버지 어윤작이 37세로 일찍 졸하였으므로, 작은아버지 어윤적을 각별하게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편지에서 "그 때 진지도 제대로 차려드리지 못했는데 문득 (중국으로) 되돌아가셨으니,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우울하여 미칠 듯하다."거나, "천륜의 지극한 정을 생각하면 쇠와 돌도 다 녹아내릴 것 같다."는 표현 등에서 작은아버지에 대한 지극하고 각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萬里初程(만니초졍)'에 수록된 어순이의 한글편지 3건='萬里初程(만니초졍)'은 어윤적의 손부 고흥류씨(1904-1933)의 친필로 편찬된 단권의 책이다. 고흥류씨는 류주석(1882-1955)과 전주이씨(1885-1917) 부부의 큰딸로, 10세 때인 1913년 일가족 망명길을 따라 중국으로 간 여성이다. 고흥류씨는 14세 때에 서간도 출류두(出類頭)에서 어윤적의 손자 어영덕과 결혼하였는데, 30세의 나이로 요절하여 중국에 묻혔다.

'萬里初程(만니초졍)'에는 17건의 한글편지가 수록되어있다. 모두 고흥류씨의 필체이다. 고흥류씨가 중국과 한국 사이에서 발수신된 편지의 원본을 베껴 놓은 것이다. 어순이 관련 편지는 어윤적에게 발신한 3건, 어윤적으로부터 수신한 1건이 수록되어 있다. 편지에서, 어윤적은 어순이를 '송집', 어순이는 어윤적을 '자근아바님'으로 호칭하고 있다. 어순이는 어윤적에게 자신을 '질녀·갈별 질녀' 등으로 지칭하였는데, '갈별'은 어순이의 거주지 갈평리 갈벌 마을을 가리킨다.

'萬里初程(만니초졍)'에 수록된 한글편지 17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유리표박 망명가족의 애끊는 가족언어, 찬탈당한 국권과 백성들의 저항적 삶의 모습, 독립운동사의 방증자료 면에서 그러하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며, 서간도에 있는 작은아버지와 가족을 향해 "쇠와 돌도 녹여 낼 천륜지정"을 적어 보낸 갈평리 질녀 어순이를 그려본다.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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