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황 칼럼] 우리 정부가 '수선 떤다'는 김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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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성경이나 함무라비법전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다.
두 국가를 운운한다 해서 민족 동질성과 통일 당위성이 없어질 일도 아니지만 화해 분위기 조성 명분이라 해도 우리 쪽에서 대원칙을 흔드는 건 장기적으로도 부작용이 크다.
방송 내용이 심리전 성격이었다면 생활정보 등 가치중립적 내용으로 바꿔 북한 주민과의 접촉선을 유지하는 게 장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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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대북 접근 부작용 살피길
관계 정상화, 상호주의 바탕 돼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성경이나 함무라비법전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다. 대개 보복의 정당성을 대변하는 게 쓰임새지만 비례성 의미가 강하다. 덜 것도 보탤 것도 없으니 깔끔하다. 이를 뒤집으면 호혜성이고, 나라 간의 신사협정인 상호주의 원조격이다. 상호 신뢰를 쌓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을 밝힌 9·19 공동성명은 단적인 예다.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이 하책 중의 하책임을 입증하려는 듯 이재명 정부는 대북 화해 기조에 공세적이지만 북한 반응은 신랄하다. 대북 확성기 중단과 대북 전단 단속, 대북방송 송출 중단 등 선제 조치에 나섰지만 북한의 김여정은 "수선 떤다"고 했다. 이 정부 출범 후 첫 입장부터 경우에 없다. '조한 관계' 운운하면서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성격을 바꿀 수 없다고도 했다. 군대 파병을 통해 대북제재 돌파구를 러시아에서 완벽하게 찾은 북한으로서는 우리 측에 기대할 게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정부의 '나홀로 구애’와 북한의 조롱 섞인 냉대가 자존심을 긁는다.
특히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통일부 명칭 변경 추진 논란은 더 그렇다. 적대적 두 국가를 내세우면서 평양의 조국통일탑 등 통일 기념물과 대남기구를 지난해 일제히 제거한 김정은의 의도는 자신의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선대 유산 지우기에 지나지 않는다. 두 국가를 운운한다 해서 민족 동질성과 통일 당위성이 없어질 일도 아니지만 화해 분위기 조성 명분이라 해도 우리 쪽에서 대원칙을 흔드는 건 장기적으로도 부작용이 크다. 김정은 정권 동조 시비는 제쳐두더라도 대외적으로나 북한 주민에게 미칠 영향을 감안해야 한다. 미래에 북한의 급변사태와 권력 공백이 빚어질 경우 순망치한의 붕괴를 그냥 보지 않을 중국, 러시아의 진입 억제를 위해서라도 통일 대원칙에 대한 의지는 어느 정권이든 확고해야 한다. 물론 우리 의지와 별개로 북한의 운명은 북한 주민의 자유로운 의지로 결정돼야 할 것이다. 러시아의 푸틴이 2022년 무력 점령한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등에서 주민투표를 통해 대내외적 병합 정당성을 굳이 얻고자 했던 건 참고할 사례다. 이 맥락에서 이종석 국정원장은 취임 후 국정원의 대북방송 송출을 중단했는데 이 또한 단견이다. 방송 내용이 심리전 성격이었다면 생활정보 등 가치중립적 내용으로 바꿔 북한 주민과의 접촉선을 유지하는 게 장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사고다.
윤석열 정부 때 파기된 9·19군사합의 복원 추진도 긴장 완화에 동의 못할 바는 아니지만, 군사적 상호 신뢰는 상호 검증 토대 하에서 제대로 구축돼야 한다. 무수한 충돌이 빚어졌던 비무장지대 내 최전방 감시초소 철거 등 군사적 조치는 선의가 아니라 쌍방 사찰을 통해 우리 군과 장병의 위험 노출 우려가 제거돼야 할 일이다.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꿔온 북한의 속성상 “마주 앉을 일 없다”는 김여정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하지만 때와 환경변화를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하다. 수십 년간의 남북관계 굴곡에 비춰 남북관계 진전은 한 정권이나 개인의 이념적 급발진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공이산'처럼 한발 한발 다져나갈 일임은 분명하다. 단계로서의 평화공존도 상호주의라는 원칙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수백억 원을 들인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같은 무도한 만행과 실패를 예고할 따름이다. 북미 정상회담 중재역을 하고도 대통령이 소대가리 삶는 소리를 한다는 등 막말을 듣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 정상화는 일방적 선의가 아니라 상호주의 바탕하에서나 지속가능하다.
정진황 논설위원실장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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