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권 칼럼] 트럼프의 ‘AI 행동계획’, 한국은 준비됐나

2025. 7. 3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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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권 더밀크 대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23일(현지시간) ‘AI 행동계획(액션플랜)’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워싱턴DC에선 ‘AI 경주에서 승리하자’(Winning the AI Race)라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국내 정치권과 많은 언론은 이를 트럼프의 AI 기술정책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아직도 AI를 ‘4차산업혁명’ 등 지나가는 유행어로 인식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1962년 9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문샷 선언’(10년내 미국의 과학기술로 인류를 달로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연설)처럼 미국이 AI를 통해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로 결정했다는 선언이자 전세계에 보낸 ‘통지’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외국이 앞서가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미국의 가치와 반대되는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트럼프의 AI 액션플랜은 세 축으로 구성됐다. 첫째, ‘친미적’ AI 생태계 구축이다. 다양성 중심의 사회적 이슈에 민감한 AI(일명 woke AI) 반대 행정명령으로 기술보다 이념적 ‘충성심’을 우선시하겠다고 했다. 이는 AI가 더이상 ‘중립적’ 기술이 아니라 ‘이념’이자 국가 파워라는 인식에서 나왔다.

둘째, AI 인프라를 국가안보 자산으로 정의했다.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연방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필요시 환경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계획은 환경보다 기술 패권을 우선하겠다는 의지다. 셋째, 글로벌 AI 표준의 미국화다. 기술 뿐 아니라 정치 문화적 코드까지 반영한 AI 모델만을 글로벌 표준으로 인정하고 동맹국에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에 맞서는 ‘디지털 마셜플랜’의 성격을 띤다.

중국도 가만있지 않았다. 지난 7월 26일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사실상의 중국판 AI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은 미국의 AI를 폐쇄적이고 독점적이며 미국의 이해만을 관철시키려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자 ‘AI 유엔’(세계 AI 협력기구) 창설을 제안하면서 글로벌 AI 거버넌스 및 다자 및 양자 협력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대목에서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의 WAIC 기조연설을 주목해야 한다. 리 총리는 “중국은 AI 개발 경험과 기술 제품을 공유해 전 세계, 특히 글로벌 사우스(개도국) 국가들의 역량 강화에 기여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중국은 딥시크 등 자체 개발한 ‘오픈소스 AI’ 글로벌 확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향후 미국과 중국은 AI 개발 역량이 부족하고 인프라가 뒤쳐진 세계 150여 개도국들의 AI 기술 및 시스템 수출과 정책 장악을 놓고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개도국 각국 정부와 기업에 당근과 채찍을 주고 ‘미국 AI냐 중국 AI냐’의 선택을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선택엔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은 기술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독특한 위치에 있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조선업, 반도체, 원자력, 로봇 등 풀스택 기술-산업 역량을 갖춘 몇 안 되는 국가다. 제조 AI, 의료 AI, 전력 기술 등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동시에 한국은 ‘애매’하기도 하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역량이나 경제적 의존도가 클 뿐 아니라 유럽의 AI 규제 방향을 이미 상당부분 수용하고 있어서 한국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AI가 제 아무리 중립적으로 위치하려 해도 트럼프의 시각으로 보면 ‘중국식’ 또는 ‘유럽적 가치’로 분류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

뒤늦게 ‘주권적(소버린) AI’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한국이 이제 단일 AI 모델로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할 수 없게 됐다. 미국 시장용으로는 중립성과 보안을 강조하고, 유럽 시장용으로는 별도 버전을 개발해야 할 판이다. 이제 기술 만큼 중요한 것이 ‘이념적 AI’가 됐다.

트럼프의 AI 액션플랜과 중국의 대응은 세계 AI 질서 재편의 서막일 뿐이다. 그 미래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를 점할지는 오늘의 선택에 달려있다. 기술만이 아니라 전략으로 승부하는 시대다. 대통령과 대통령실, 그리고 모든 부처가 중요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워싱턴과 실리콘밸리의 AI 업계 및 정책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분석해 한국에 실시간으로 전달해야 한다.

기술적 우수성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지정학적 감각, 전략적 사고,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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