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상 '한 컷', 누군가에게는 지친 하루의 작은 위로 

이서후 기자 2025. 7. 3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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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 36.5] 창원서 일상 만화 그리는 김정우 씨

그림 제대로 배운 적 없지만
첫째 육아 그림일기로 시작

공부방, 가족 등 일상 담아
"그리는 게 좋아서 하는 일"

산업화 시기 창원 이야기 등
지역 이야기로 주제도 확장
"또래 공감할 내용 그리고파"
주로 '킥킥' 하고, '히히' 하다가도, '음음' 하거나 '하아' 한숨을 쉰다. 김정우(45) 씨의 일상 만화 이야기다. 처음 그의 인스타그램(@rooldis)에서 만화를 보고는 '응? 이거 재밌다!'고 생각했다. 단순하면서도 진심이 담겼고, 위트가 살아 있었다. 그대로 웹툰으로 연재해도 제법 인기가 있겠다 싶었다. 굳이 직업을 이야기하자면, 정우 씨는 수학 공부방 선생님이다. 만화와 그림 그리기는 그의 취미다. 아니, 취미라고 하기에는 행복한 '소일'에 더 가깝다. 만화로 일기를 쓴다고 표현해도 좋겠다. 어쨌거나 그의 일상 이야기가 담긴 만화는 사람들에게 때론 과격하게, 혹은 잔잔하게 위로를 준다.
김정우 씨의 일상 만화. /김정우 

창원 토박이 = "어쩌다 보니 태어난 곳에서 5㎞를 안 벗어나고 계속 살고 있네요."

정우 씨는 창원 토박이다. 지금은 차룡단지가 들어선 동네(차룡동)에서 태어난 후 명서동에서 자랐고, 결혼 후에는 팔용동에 살고 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도 국립창원대학교를 집에서 통학했으니 팔용동 주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지겹지 않으냐고 물으니 오히려 창원이 좋다고 했다.

"지금 사는 팔용동은 살기 편해요. 동네 안에 모든 게 다 있어요. 벗어나고 싶지는 않은데, 우물안 개구리라는 생각은 하죠."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과는 다르게 그는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공부방을 여는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는 집에만 있지만,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부지런히 지역 곳곳을 돌아다닌다. 실제 창원 동네책방에서 하는 글쓰기 모임이나, 책 읽기 모임에 꾸준히 참가한다. 재미난 벼룩시장(플리마켓)이 열리면 여지없이 얼굴을 드러낸다. 그의 만화에는 이런 일상 이야기와 여기서 나온 생각들이 담겨 있다.
창원에 살며 일상 만화를 그리는 김정우 씨. /이서후 기자 

놀랍게도 그는 그림이나 만화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2007년 첫 아이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엄마 커뮤니티에 그림일기를 올리면서 시작했죠. 아기 엄마들이 댓글을 달면 거기 또 답글을 달면서 놀았어요. 블로그 같은 데 만화를 올리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이때죠.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은 없어요. 그냥 타고난 것 같아요. 어떤 일을 겪으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그려져요."

임신과 육아로 시작한 그림일기는 실제 〈만화로 보는 좌충우돌 임신·육아 일기〉(파인앤굿, 2010)란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점차 크면서 그의 그림은 다양한 주제로 확장된다. 지금은 공부방 아이들이 이야기가 주된 주제다. 이는 '정우 공부방 역사서'란 제목의 노트에 차곡차곡 그려진다. 또, 그가 참석하는 글쓰기나 책 읽기 모임 이야기도 자주 그린다. 더러 가족 이야기도 있다. 

한 번씩 그리는 목욕탕 장면이 인상적이다. 정우 씨는 목욕탕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한 번씩 여자 목욕탕 풍경을 그리는데, 동네 목욕탕 분위기가 정말 잘 담겼다. 관찰력도 좋아야 하지만, 표현력이 기가 막힌다. 요즘에는 표현력을 높이려고 어반 스케치 수업을 듣는다. 이는 현장 풍경을 있는 그대로 펜이나 연필 등으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세밀한 묘사가 특징인데, 정우 씨의 그림체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자기 그림체를 잃지 않을 정도로만 배운 걸 적용하고 있다.
김정우 씨가 그린 동네 목욕탕 풍경들. 세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김정우
김정우 씨의 일상 만화. /김정우 

"지역 이야기 더 담아내고파" = 인스타그램 같은 누리소통망(SNS) 말고도 그는 노트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린다. 다이어리도 그림으로 정리하고, 자연 관찰 일기를 그림으로 그리기도 한다. 산업화 시기 한창 확장되던 창원 도심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담긴 〈창원대로드킬〉(창원대로 + 로드킬)나 여름 모기 이야기를 과격하게 그린 〈모기〉를 비롯해 여아 낙태로부터 살아남은 이야기를 그린 〈세 번째 아이〉, 언니한테 반항하면 안되는 이유를 담은 〈언니들〉처럼 나름 서사가 있는 책자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정우 씨는 왜 이렇게 열심히 그리는 걸까.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요. 그냥 좋아하니까. 제가 그냥 순수하게 좋아해서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안 하고 있어서 좋아요. 만약에 업으로 했으면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한 번씩 전문적으로 그림 그리시는 분들 보면 그림이 싫어지는 걸 겪으시더라고요. 저는 한 번도 그런 적 없거든요." 
김정우 씨가 그린 그림과 만화로 만들어진 책자들. /이서후 기자 
모기 이야기를 과격하게 그린 〈모기〉일부. /이서후 기자 

여기서 알 수 있는 게 그에게 그리는 일은 현실 도피이거나 답답한 일상의 해방구 같은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운 일상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공부방에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도 정말 좋아한다. 그는 얼마전 '급성 대동맥 박리'로 죽음 문턱까지 갔다왔다. 

"그때 죽음에 관해 생각을 했는데, 현재 삶이 만족스러워서 당장 죽어도 크게 상관은 없겠다 싶었어요. 지금 곧 죽는다고 해도 뭔가 더 해보고 싶은 거라든가 후회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다만, 지금 사라지면 남겨진 사람들이 무척 슬프겠다는 생각은 했죠." 

그래도 정우 씨가 뭔가 그림이나 만화로 하고 더 싶은 일이 있다면 〈창원대로드킬〉처럼 지역 이야기를 발굴해 담아 내는 일이다. 

"가만 보면 우리 또래 이야기가 많이 없더라고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싶어요." 

앞으로도 정우 씨는 창원 어딘가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계속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이 기사를 읽는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김정우 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있다. 그림만큼 화려한 바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서후 기자 

 /이서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