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잊힌 이름 ‘마한’, 고대 문명의 원형을 걷다

윤태민 기자 2025. 7. 3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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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 작가, ‘잊혀진 나라 마한 여행기’ 출간
저항과 연대의 정신 남도 역사와 맞닿아
기록과 상상으로 정체성 찾는 역사기행
축제와 음악 등 공동체적 삶의 흔적
정은영 지음/율리시즈 펴냄

한반도 중서부에 기원전부터 6세기까지 약 800년간 실존했지만 백제에 병합되며 역사에서 사라진 마한(馬韓)이 정은영 작가의 신작 '잊혀진 나라 마한 여행기(율리시즈)'를 통해 새롭게 조명된다.

전작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로 세종도서에 선정되며 고대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끌어낸 정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마한'이라는 이름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정체성을 탐색한다.

책은 고고학적 설명이나 역사 기록의 나열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감성적인 여정으로 구성됐다.

마한은 진한, 변한과 함께 삼한을 구성했던 고대 연맹왕국으로 기원전 3세기부터 6세기까지 54개 소국이 연합한 연맹체로 존재했다. 중앙집권이 아닌 자율적 공동체를 유지한 이들은 혈연 중심의 다장(多葬) 풍습, 옹관묘, 400년간 지속된 아파트형 고분, 구슬과 문신 등 독특한 생활양식과 미의식을 남겼다. 정 작가는 이 문명이 단순한 소국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들어 있는 '한(韓)'의 출발점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두 개의 축으로 짜였다. 1부에서는 익산·고창부터 담양, 광주·나주·영암·함평·무안·목포·해남·신안에 이르기까지 남도의 마한의 주요 유적지를 발로 찾아가며 유적지와 풍경을 따라가는 여정이 감성적으로 펼쳐진다.

2부는 마한을 상상하는 시간으로, 문헌이 남기지 못한 빈틈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복원해 마한인의 정신과 세계관을 새롭게 구성한다. 정 작가는 단순한 유물 나열이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안고 여정을 이어간다.
 
전남 영암군 내동리 쌍무덤.

특히 '마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영암을 비롯해 나주 반남 고분군, 정촌 고분의 금동신발, 광주 신창동 유적의 현악기 등은 공동체적 문화의 깊이를 보여준다. 마한은 금보다 구슬을 귀하게 여기고, 축제와 음악을 삶의 일부로 삼았으며, 제천행사와 예술의식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했다.

저자는 마한인의 '사납고 용맹함'이라는 기록에 주목하며, 이를 억압에 저항하는 정신으로 해석한다. 이 정신은 동학농민운동, 광주민주화운동 등 남도의 역사와도 맞닿는다고 평가한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이자 고고학 전공자인 정 작가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전국의 마한 유적지를 탐방하며 계절마다 다른 땅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기록해왔다.

그는 유년 시절을 보낸 함평에서 마한 유물을 마주하며 깊은 애정을 확인하고 그것이 역사와 현재를 잇는 매개가 됐다고 말한다.
 

정은영 작가는 광주 출신으로 서울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뒤, 과학학 석사와 예술경영 학위를 취득했다.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 정책과 현장을 두루 경험했으며, 국무총리비서실과 대통령비서실을 거쳐 현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유전학', '거울 속의 원숭이' 등을 펴냈다.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는 세종도서에 선정되면서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 도서로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