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출발에도 '적은 숫자'로 비교적 잘 막았다...장상식 "90점"

오지혜 2025. 7. 3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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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EU보다 적은 금액으로 상호·자동차 관세 낮춰
농산물 추가 개방 막아...에너지 구매도 '윈-윈'
한미 FTA 무력화로 미국 시장 경쟁 치열해질 듯
모호한 투자 펀드 구체화 등 남은 숙제도 많아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미국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에서 열린 '한-미 통상협의 결과브리핑'에서 발표문을 낭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구 부총리,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기획재정부 제공

이재명 정부가 출범 두 달도 되기 전 한미 관세 협상이라는 큰 산을 넘었다. 3,500억 달러 투자 펀드 조성과 1,000억 달러 에너지 추가 구매 등 미국의 뜻이 반영됐지만 국내 농산물 시장 보호와 상호관세 및 자동차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점에서 전문가들은 대체로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무력화로 미국 시장 내 경쟁이 과열되고 개념조차 모호한 펀드를 마련해 나가는 과정에 난항이 예상된다.


3500억 달러로 일본·EU와 비슷한 결과 얻어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타결된 31일 경기 과천시의 한 중·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수입 업체에 미국 브랜드의 픽업 트럭이 나란히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31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통상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괜찮은 협상으로 상호관세를 경쟁국인 일본·유럽연합(EU)과 같은 15%로, 자동차 관세를 15%로 깎고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을 지웠다고 평가했다. 일본과의 협상을 시작으로 등장한 '대(對)미 투자 펀드'도 3,500억 달러로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도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 규모는 660억 달러(8위)로, 5,500억 달러 규모 펀드를 만들기로 한 일본(685억 달러·7위)과 비슷하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부터 움직인 나라들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했지만 빠르게 결론을 내린 점도 높이 샀다. 한태식 LG경영연구원 경제정책연구부문 연구위원"최종 숫자가 작다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며 "중간에 정권이 바뀌면서 협상 시작이 다른 나라 보다 늦었고 그 때문에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는데도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된 31일,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 미국산 소고기가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쌀·소고기 등 민감도가 높은 농산물 분야 추가 개방을 막았다는 점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측이 협상 초기부터 미국산 소고기 30개월 월령 제한 해소 등 농축산물 시장을 추가로 열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농축산물 시장 개방 압력에도 불구하고 협상 대상에서 빠져 농업계의 이해를 일정 부분 지켜냈다"며 "(전체 협상이) 100점 중 90점은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평했다.

에너지 구매도 무리 없이 마침표를 찍었다. 정부는 미국산 원유·액화천연가스(LNG)·액화석유가스(LPG) 등 에너지를 4년 동안 1,000억 달러(연평균 250억 달러)어치 사기로 했는데 지난해 기준 224억 달러 정도를 수입했던 터라 증가 폭이 연간 26억 달러(약 34조7,375억 원) 정도다. 반면 EU는 3년간 7,500억 달러를 구매하기로 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국인 한국으로서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경제성 논란이 크던 알래스카 LNG 투자 및 구매는 이번 협상에 담기지 않았다.


한미 FTA는 결국 무력화... 펀드 구체화도 남은 숙제

대미 수출 관세 인하와 조선업 투자를 뼈대로 한 한미 무역 협상이 타결된 31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대형 크레인이 보이고 있다. 거제=뉴스1

한미 FTA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점은 아쉽다. 장 원장은 "국내 기업들이 미국 기업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자유롭게 경영을 했다"며 "하지만 이젠 미국 기업보다는 훨씬 불리하고 일본·EU 등과 같은 선상에서 경쟁을 하게 돼 아쉽다"고 짚었다. 또 자동차 관세의 경우 2.5%의 기존 관세가 있던 일본·EU와 똑같이 15%로 매겨진 점도 뼈아프다.

실체가 애매한 2,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외교부 FTA 교섭 대표를 지낸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개념이 모호한 펀드는 추가 협상을 통해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며 "이제 합의문을 써야 하니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생각하고 긴장감을 늦춰선 안 된다"라고 했다. 장 원장 역시 "투자 대상, 집행권이 미국에 있어 미국의 정치나 산업 보호 정책 등에 따라 방향이 왔다갔다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확실성도 시한 폭탄이다. 한 위원은 "미중이 통상 전쟁을 휴전했지만 이게 틀어지면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무역 판도를 뒤흔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 본부장도 "미국 내 관세 정책, 정치·경제 상황이 언제 변할지 모른다"며 "통상의 구조적 변화를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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