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소고기 지켰지만 트럼프 말에 숨은 빈칸… 안심하기엔 이르다
한미 관세협상, 농축산 방어했지만
“전면 개방” 발언에 농민 긴장 계속
콩, 옥수수, 가공용 곡물 수입 늘어날까

‘최후의 보루’였던 쌀과 소고기를 지켜냈지만 농민들의 마음은 아직 무겁다. 한미 관세협상 직후 경기도 농축산업계는 환영과 우려가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31일 오전 대통령실은 브리핑을 통해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을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농산물 개방 태도를 문제 삼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며 이견을 보여왔지만, 협상단의 끈질긴 설득 끝에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소고기 월령제한 해제 문제나 쌀 수입 등과 관련해 양측의 고성도 오간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식량 안보와 농업 민감성을 감안해 방어를 계속해 추가적인 양보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에 농축산업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서영석 전국한우협회 정책지도국장은 “협상 직전까지도 소고기 시장 개방에 대한 긴장을 늦출 수 없어서 굉장히 불안했다”며 “어려움 중에도 농축산 시장에 대한 부분들을 잘 지켜낸 것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내 현장의 시선은 마냥 낙관적이지 않다. 일부 농민과 농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합의의 ‘빈칸’이 장차 다른 품목 개방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경계심도 함께 표출된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쌀과 소고기 외에 다른 농축산물 개방에 합의한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협상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한국이 농축산물 시장을 전면 개방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우리 정부는 이를 “정치적 표현”이라고 일축했다.

양측의 엇갈리는 입장에 일부 농민들은 쌀과 쇠고기를 제외한 콩, 옥수수, 가공용 곡물 등에서 미국산 수입이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쌀 생산 과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콩, 깨 등 타 작물 재배를 늘리고 벼 재배 면적을 줄인 농가에 인센티브를 주는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시행했다. 이때문에 길병문 전국농민회총연맹 경기도연맹 의장은 “정부는 대체작물을 심으라지만 미국발 수입 작물이 언제 어떻게 열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작목을 심을지 결정하기 어렵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 측에서 우리 정부에 문의한 ‘과채류 검역 기준’ 역시 주목할 지점이다. 과채류는 병해충, 인체 유해 가능성 등 검역 사유로 인해 통상 7~8단계 절차를 거쳐야 개방이 가능하다. 우리 정부가 미국 측의 검역 완화 요구를 수용하면 사과 등 과거 심사가 중단·정체됐던 품목이 빠른 시일 내에 국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검역 기준을 통과하려면 5~10년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종의 비관세 장벽으로 인식된다”며 “추후 검역 조치 완화 정도에 따라 국내 과채류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zon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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