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 로맨스’ 벗은 심청이 다시 쓴 운명…새 판소리극 ‘심청’

임석규 기자 2025. 7. 3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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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한 타악기 리듬에 이어 현악기 소리가 낮게 흐른다.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주렴 비춰들 제~" 판소리 '심청가'의 눈대목으로 꼽히는 '추월만정'은 심청이 황후가 되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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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업보 짊어진 심봉사, 하이힐 뺑덕어멈 등장</span>
국립창극단의 ‘판소리극 심청’ 리허설 장면. 국립극장 제공

격한 타악기 리듬에 이어 현악기 소리가 낮게 흐른다. 심봉사가 더듬더듬 손을 뻗어 라디오를 귀에 대자, 심청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주렴 비춰들 제~” 판소리 ‘심청가’의 눈대목으로 꼽히는 ‘추월만정’은 심청이 황후가 되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 진양조 느린 장단에 구슬픈 계면조 가락으로 불러야 제맛이다. 지난해 인기를 얻은 드라마 ‘정년이’에서 배우 문소리와 김태리가 1년 넘게 연습했다는 그 곡이다.

30일 국립극장이 일부 공개한 리허설을 보면, ‘판소리극 심청’은 원본과 색다른 작품이 될 것 같다. 눈먼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효녀 심청’과는 거리가 멀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이유에서부터 접근법이 다르다. 심봉사나 뺑덕어미도 기존 캐릭터들과 확연히 다른 아우라를 발산한다. 판소리 가사는 그대로지만 결말도 원작과 다르다. 대본을 쓴 연출가 요나 김은 “심청이 용궁에서 돌아와 왕비가 되는 동화적인 ‘용궁 로맨스’는 없다”고 했다.

“원작에선 심청이 모든 걸 떠안고 죽잖아요. 그냥 착하기만 한 1차원적 캐릭터죠. 이번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심청을 죽음으로 내몰아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심청으로 캐스팅된 소리꾼 김율희는 “심청가를 부를 때마다 ‘심청이가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느냐’는 의구심이 있었다”며 “마음속에 있던 불편함과 궁금증을 표출할 수 있어서 울컥울컥한다”고 했다. 역시 심청 역을 맡은 국립창극단 배우 김우정은 “심청이 우리 모든 여성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연출님의 이야기가 와 닿았다”고 말했다.

국립극장과 전주소리축제조직위가 공동 제작하는 ‘판소리극 심청’ 포스터. 국립극장 제공

심봉사 캐릭터도 원작과 차이가 크다. 국립창극단 배우 김준수는 “심봉사가 눈을 뜨듯이, 작품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며 ‘업보’란 열쇳말로 심봉사 캐릭터를 설명했다. “심봉사뿐 아니라 작품 속 인물들, 그리고 우리 모두 저마다의 큰 업보를 지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싶어요.” ‘심봉사 전문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국립창극단 배우 유태평양은 “심봉사를 주변을 돌보지 못하는 나약하고 무기력하기 짝없는 인물로 설정하면서 작품 곳곳에서 색다른 해석들이 나온다”고 했다. 하이힐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뺑덕어멈’도 원작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심청’과 대척점에 선 인물로 그린다. 심층의 다층적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어린 심청’과 ‘노파 심청’도 등장한다.

오페라에서도 원작의 배경과 인물의 성격, 결말 등을 자유롭게 변형하는 ‘레지테아터’ 연출이 많다. 요나 김은 “단어와 문장은 그대로인데 문맥을 바꾸는 거라고 보면 될 것”이라며 “판소리 음악의 절절함과 감정은 유지하되, 그 이야기를 낯선 환경들에 방치하면 제3의 새로운 텍스트가 떠오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립창극단 단원을 포함해 157명의 출연진이 무대를 누빈다. 다음 달 13일 개막하는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먼저 선보이고, 오는 9월3~6일 국립극장에서 공연한다. 두 기관 공동 제작 작품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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